충청효교육원장 부근 최기복

부끄럽다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는 말에 얼굴을 한 없이 숙이던 때가 있었나 싶다. 대신 자신이 한 잘못을 나 몰라라 하는 몰염치가 판을 치기 시작한다.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사라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세 개가 무너지면 근간이 뒤집어지고, 넷을 잃으면 망한다고 했던가!

제나라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룬 관중은 예(禮), 의(義), 염(廉), 치(恥)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망한 나라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시 세울 수가 없다는 이 준엄한 말 앞에서 숙연해질 수박에 없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서다.

그것이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온 사회 구석구석이 점점 예의와 염치를 잃어간다. 그러니 기강이 서겠는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모자식 간에도 엄연히 예의염치가 있어야 비로소 효가 붙어 있을 틈이 생긴다.

늙은이는 교활하고 젊은이는 싹수없다는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효는 자생할 수 있다.

에이즈 걸린 자식에게 너도 마구 옮겨라하는 아버지와 뭐 해준 것이 있냐고 부모를 상해하는 자식이 있는 한 효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어느 주부의 살가운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따스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33살의 주부. 32살에 시집와서 따로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남편이 자꾸 시아버지를 모시잖다. 며칠을 싸우고 또 싸웠단다.

하루는 남편이 술이 취해서는 시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어려서 개구장이인 남편은 매일 사고를 치고 다녔는데 시아버지가 그 뒷수습을 다 하셨단다.

어느 날인가는 골목길에서 놀다가 지나가던 트럭에 치일 뻔했는데 시아버지가 남편 대신 부딪쳐서 지금도 어깨를 잘못 쓰신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시는데 남편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26살까지 놀고 먹었단다.

그리고 평생 모아 장만한 집도 시아주버니와 남편 집 마련할 때 파시고 지금은 전세를 사신다고 하면서 울먹였단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

임신 3개월에 150만원 밖에 안 되는 빠듯한 월급으로 시아버지를 모시자니 여러 가지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없었단다. 시아버지도 매번 신경 써서 반찬을 해드리면 그걸 드시면서 엄청 미안해 하셨다. 가끔 고기반찬이나 맛있는 것을 해드리면 안 드시고 뒀다가 남편 오면 먹였단다.

“하루는 장보고 집에 왔는데 걸레질을 하고 있으신 거 보고 놀라서 걸레 뺏으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청소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식사하시면 바로 들고 가셔서 설거지도 하십니다. 몇 번씩 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뺏어도 보지만 그게 편하시답니다” 못난 며느리 눈치 보이시니 그렇게 행동하시는 것 안다면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던 시아버지가 한 달쯤부터는 아침에 나가면 저녁때 들어오셨단다. 어디 놀러라도 가시는 것 같아서 용돈을 드리면 받으시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아래층 사는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오다가 이집 할아버지 봤는데 유모차에 박스 실어서 가던데…”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아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펑펑 울면서 찾아보았지만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도 일찍 퇴근해서 찾아 나섰다. 한 시간쯤 지나서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왔는데 시아버지는 눈치를 보면서 뒤에 끌고 오던 유머차를 숨기셨다.

왜 그리도 가슴이 아프던지 달려가서 시아버님께 죄송하다며 손을 꼭 잡고 엉엉 울었단다. “아버님, 저 눈치 안 보셔도 되요. 제가 그렇게 나쁜 며느리 아니잖아요. 아버님의 힘드신 희생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남편도 없잖아요. 그랬다면 지금의 저와 뱃속의 사랑스런 손자도 없을 거예요”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언제 한 번 제대로 염치를 차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곁에 계시지 않으니 말이다. 요즘 박스를 줍는 노인들이 부쩍 늘었다. 박스를 줍는 일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추워진 날씨에 이 주부의 이야기가 더욱 푸근하게 들리는 이유도 그래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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