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수면을 응시하는 고고한 백로처럼, 너른 옷자락을 털어내며 시름을 거두는 선비처럼 지조와 절개로 곧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어쩐지 기상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송산은 문인의 혼을 담아낸 열정의 산물, 현상을 초월한 거인의 역(巨人의 力)이었다. 문청(文靑)의 꿈을 심어줬고 예민한 감수성의 자신을 이끌어주신 스승 조지훈, 유치환 선생 그리고 마음의 고향 한용운, 김소월, 노천명, 정지용, 이상, 백석, 황순원, 이광수 선생을 외치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올랐던 시와 소설들이 외국에 제대로 번역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한탄했다.
송산은 삶 전체를 던져 이 땅의 예술인으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살아왔다.
늘 최고를 위해 서두르지도 욕심을 내지도 않는 아름다운 청년, 새로운 삶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그의 어깨에는 거목다운 힘과 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었다.

비분강개하며 열변을 토했고 하객들은 우왕좌왕했다. 어느 하객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급히 자리를 떴다. 갑자기 하객 중 한명이 원탁을 ‘쿵’ 하니 내리치며 일어섰다.
“야! 이 개새끼! 너 이래도 되는 거야! 선배 알길 개똥만치도 여기지 않고 어디 그따위 주둥일 놀리고 있어!”

옆 원탁에 앉아있던 안경 낀 중노인도 원탁을 ‘탁탁’치며 소리쳤다.
“대체 사람을 초대해놓고 이따위 결례가 어디 있냔 말 야!”
여기 저기 고함을 치면서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의 만류로 가까스로 사태가 다소 진정되는 듯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다소 수그러드는 순간, 식장 앞줄에 앉은 회색 중절모를 쓰고 수염을 듬성듬성하게 키운 중노인이 다시 ‘씩씩’대며 일어섰다. 깔깔하고 꼬장꼬장한 얼굴선은 마치 한겨울 암벽을 연상케 했다. 그는 분을 못 참겠다는 듯 맥주잔을 치켜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박일두야! 시건방진 짜식! 지가 글로 출세 좀 했다구, 보이는 게 없나본데, 이 새끼 너도 곧 원로소리 듣게 돼! 개자식아! 원로 알기를 우습게 알구있어! 개뼉다귀 같은 새끼! 에잇, 더러운 새끼!”
그와 동시에 치켠 든 맥주잔을 거침없이 송산을 향해 ‘휙’ 내뿌렸다. 그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이 원탁을 ‘후딱’ 뒤 엎어버렸다. ‘와르르’ 맥주며 차려 놓은 음식이 바닥에 내 동댕이쳐졌고 그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나머지 하객들도 ‘우루루’ 그를 따라 나갔다.
“저따위 놈은 문단에서 완전히 짤라야 해! 제수대가리 없는 날이네, 참! 에잇 더러워! 저런 새끼랑 두 번 다시 상종을 말아야지!”
“아, 맞아요.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할 수 있는거야. 원, 미꾸라지적 생각지 못하고, 제기랄…”

문단계의 거목, 송산의 생신기념 시집출간 행사를 열고 있는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 위치한 르네상스 호텔은 축하객들로 붐볐다.
호텔 로비는 오늘의 성대한 축하장을 마음껏 빛내주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문인들과 정·재계 유명 인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단상에는 ‘문단계의 거목 송산 시집 축하연’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고, 양옆으로 대형 화환이 거대하게 놓여 있었다.
이종필 국회의장을 비롯 장관 및 사회계의 내로라하는 거물급들로 북적였다.
입구엔 우아하니 활짝 핀 란들이 한껏 뽐내며 각종 축하화환들로 빼곡하게 들어찼고 공간이 부족하여 일부는 식장 안에까지 들어섰다.
큼직한 축하의 글귀가 적힌 형형 색상의 리본과 함께 식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기념품 증정이 끝나고 건배를 제의하며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사회자는 “특별히 이 자리를 빌어 송산 선생께서 절필의 미란 시를 낭송 하겠다” 라고 하며 박수로 그를 환영하자고 했으며 송산은 뜻밖에도 “원로들이여 절필하라”고 외쳤다.
갑작스런 그의 직설적 비판은 당하는 사람들에게 독설로 받아 들여졌다.
돌출 행동에 당황한 문인들은 식장을 퇴장하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삼갈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찬란한 풍요, 대지의 생명력, 투명한 순수,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이상향이 새 날개를 달고 더 큰 비상을 시작했고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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