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변변한 건물하나 없이 셋방살이로 명맥유지

야학교사는 항상 부족하다. 보람도 크지만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야학을 방문한 그날은 적은 수의 학생과 작은 컨테이너 교실이 넘쳐 삐질 듯이 많아 보이는 교사가 있었다. 최근 들어 신입교사가 늘고 있다며 권 교장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별빛처럼 번진다. “야학에 몸담게 되면 자신의 시간도 자신만의 시간이 되지는 못 합니다” 권교장도 자신을 위한 투자보다 매일 3~4시간 되는 수업과 부족하지만 학생들을 위한 환경조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등불야학은 지난 1974년부터 가정형편으로 인해 제때 학업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글반, 초·중·고교 과정을 가르쳐 왔다. 30년의 세월이 지났으면 제법 반듯한 교실도 갖추고 집기도 정비되어 있으련만, 등불야학은 변변한 건물하나 없이 셋방살이로 근근이 명맥을 지키고 있다. 등불야학의 나이는 벌써 30살이다. 그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몇 평되지 않는 학교터 조차 없어 벌써 몇 차례 떠돌이 신세다. 자신의 빛을 드러내지 않고 30년의 세월을 묵묵하게 한몫 톡톡히 해내고 있는 야학인들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로 남는다. “이마저도 어느 독지가가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항상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할 뿐이에요” 현 교사(남리 굴다리 옆)의 전세금도 독지가가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 독지가는 학생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터가 확보되면 건물을 신설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확정지로 결정되면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땅값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서 권 교장은 학교수업에, 야학관리에 관계자를 만날 준비를 하느라 하루가 분주하기만 하다. “땅값이 너무 올라서 선뜻 희사할 분이 계실런지...?”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권교장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저는 야학 일꾼이 된지 1년밖에는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30년 전 야학을 시작한 선배님이 가졌을 초심이 변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배우고자 찾는 연세가 많은 학생들(할아버지, 할머니 뻘)의 의욕 때문이었을 겁니다.”며 “소홀하지 않게 그 길을 지켜 나갈 거예요”라며 당찬 모습을 보인다. 현재 야학에서 등불을 밝히는 사람은 40여명의 학생과 10여명의 교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학생들 중에는 혼자 검정고시 공부를 하다가 영어, 수학 때문에 찾아오는 이도 있고, 직장일 때문에 공부할 시기를 놓친 사람, 가정주부도 있다. 등불야학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선배인 학생에게서 삶에 대해 배우는 것도 많다. 학원 같은 분위기나 검정고시 위주가 아닌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야학. 늦은 밤 불 밝힌 그들이 있는 곳이야말로 요즘 상종가를 올리고 있는 맞춤식 교육. 1:1 교육의 원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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