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이상 자경농지에 대한 세금감면최근 정부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토지를 수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이런 경우 농지를 지속적으로 경작하여 온 거주자인 경우에는 농지 양도로 인한 양도소득세 감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관련 감면규정을 살펴보자. 농지 양도에 따른 소득세법상 감면 규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으로 2가지로 볼 수 있다.첫째는 ‘8년 이상 자경농지에 대한 감면’이며, 다른 하나는 ‘농지 대토 감면’이다.이번에는 8년 이상 자경하는 농지를 양도하는 경우에 적용받을 수 있는 감면에 대해 알아보자.우선 본 감면을
우리가 남의 글을 읽고, 그것이 문학이든, 문학이 아닌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절실한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작자의 생생한 목소리와 몸짓과 부딪혔을 때이다.누구나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누구나가 다 무가치하게 보아버리기 쉬운, 잡문(雜文) 같은 데에서도 때로는 충격적인 감동을 받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소설 天風(천풍)을 연재한지 7년여가 되었다.연재 초기에만 해도 나의 중요 한 즐거움은 나의 사회적인 활동 속에 있었다.나의 욕망도 야심도 그 속에 있었다. 그 사이 허탈감 같은 것이 있어 문득, 되돌아보니 부족한대로 열심히
1946년 5월 초순. 중국 텐진항에서 미군 상륙용 함정인 LST 한 척이 뱃고 동을 울리며 동으로 항해를 시작했다.승무원 등 500여명을 태운 이 배는 일제 의 패망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인들이 대거 타고 있었다. 이른바 ‘귀국선’이었다.전투용 군함이기에 몹시 배가 흔들려 다들 멀미를 심하게 했다.그러나 이들에게 이 배는 ‘노아의 방주’나 마찬가지였다. 이날 ‘귀국선’ 갑판 위에서 한 젊은이가 무거운 시선으로 중국 땅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그는 일제의 패망으로 패잔병 신세가 돼 귀국하는 ‘박정환 중위’였다.만
부귀영화가 따라오지 않아도, 정의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답변을 아버지께 듣고 싶었다.최고의 현인이자 능숙한 변론가이지만 아버지는 내 논리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러나 활기차고 열정이 넘쳤던 그날, 희망, 나라의 미래는 바로 이런 자신의 아들에게서 나온다고 아버지는 믿었다.‘물을 마시면 목마름이 해결된다’는 사실에 근거한 논리이다.오로지 존재의 실상에 근거한 논리일 뿐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이 지역과 저지 역, 이 종교와 저 종교, 남자와 여자 등 특정한 어디에만 적용되지 않는 보편적 진리의 길이다.일본육사를
“박정환이 우리 근대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바로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다.”“저도 그를 부정하지만 그가 이룩한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지 않아요.”하지만, 그는 남로당 고위 간부인 이재복, 최남근 등과 함께 군대 조직, 특히, 그가 중대장으로 있던 육사 내부에 남로당 세포를 침투시키고 무력혁명을 획책 하는 활동을 했다.그러나 1년 만에 출세를 향한 박정환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 고 말았다.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14연대에서 지창수 상사 등, 남로당 하부 세포가 주도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이른바 여순
육군사관학교 생활은 지금도 혹독하지만 과거 만주군관학교의 생활은 처참할 정도로 혹독했다. 그 무엇보다도 박정환을 힘들게 한 것은 민족적 차별이었다.공식적인 식사에서도 일본인 생도들에게는 쌀밥을 주고, 중국과 조선인 생도들 에게는 수수밥을 주었다. 게다가 조선인 생도들은 중국인 생도들에 비해 수적 으로도 열세인 터여서 민족적 차별이 더욱 심했다.“일본 육사시절 그는 동기들에게 ‘우리는 독립해야 한다. 독립이란 혼자 사는 것이다.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사는 것이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그래서 일본인들을 이기는 길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일본은 100년,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 이 걸렸다. 박정환이 이끈 대한민국만이 오로지 30년 만에 1만 달러를 달성했다.어떻게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로 만들 수 있 었는지에 열광하는 것이다.“아버지, 18년간이나 장기집권·독재하면서 그만한 것도 못 이루면 말이 돼요?”“그래도 성장과정과 꿈, 그리고 그의 도전을 통해 많은 배울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못된 점은 과감히 버리고, 좋은 것들은 과감히 수용하여 나를 발전
“박정환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어떤 인물일까요?”“그동안 우리는 또 다른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옛 추억 속에 잠들어 있던 그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어요.”“왜 우리는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걸까?”“박정환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만세 ’를 불렀다고 해요.”“대한민국에 참 민주주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쁜 생각 때문이었다.”“그러나 요즘 생각은 달라요.”“그래 박정환 대통령만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열심히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나는 지금도 진보와 보수를 말하며 아버지가 던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사회는 진보하는 데 왜 보수 는 반성치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가?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 답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또 다시 기나긴 세월이 소요될 필요는 없다. 한국 보수가 가장 부족한 것은 도덕이다.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군부독재의 태동!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5·16군사쿠데타’를 틈만 나면 ‘혁명’으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쿠데타와반란, 그리고 혁명은 분명히 다르
“반민주반민생반평화적폐들을 일소하고!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게 촛불이었어요!”“그들 보수가 기득권 지키기엔 온갖 권력을 한데 모아서 행사하고 싶겠지.”“그래서 진보에선 권력을 쪼개야 한다고 있는 거 아니에요?”“그래야 권력 주체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지.”“이렇다 보니 보수에선 죽자 사자 억지를 쓰는 거구요.”역사는 한 방향으로만 우리를 안내하지 않았다.계속 진보하거나 계속 퇴보하지도 않았다. 가르침을 주고 기다린다. 깨달을 시간을 준다. 우리는 4·19
박정환 대통령이 취한 유사민간화 통치방식을 가리켜 ‘군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었다’라고 하는데 화공당은 그 군복 위에 걸쳐 입은 양복과 같은 것이었다.정민당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가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 등 두 차례의 군사적 행동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나서 그 기반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정민당과 화공당이 다른 점이 있다면 화공당은 중앙정보부가 만들었고 정민당은 보안사가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경쟁자인 야당의 정치활동을 묶어놓고 국가기관이 비밀리에 정민당을 만든 과정은 화공당의 설립과정을 따라 했을 것이
하지만 그와 비슷한 취지의 분노와 원망의 언어는 있을 수도 있다.조선의 백성들이 제대로 알았다면 ‘탈보수’를 부르짖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병자호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외적이 북쪽에서 내려온 탓에 임금에게는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만주로 도망치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다가 항복을 했다.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침략자들에게 집단으로 납치되었다가 그중 일부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던 남자들의 가장 큰 피해자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몇 년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키는 외롭고 힘든 학문적 투쟁을 해왔다.“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이 무엇이죠?”“동북공정은 중국이 자기들의 역사를 한반도까지 확대하려는 기대야.”“식민사관은 요?”“일본이 자기들의 역사를 한반도 까지 확대하려는 기도라는 공통점이 있어.”“둘다 우리의 고유한 역사를 침탈하고 우리 영토를 줄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어요.”이런 불순한 기도에 맞서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지키겠다는 독립운동가의 심정으로 치열하게 연구해온 당대 최고의 학자에 대한 나라의 대접이 이것인
“관계, 법조계, 군, 경찰 할 것 없이 친일파가 나라의 중추를 몽땅 차지 한 나라 아니냐.”“이건 광복이 아니에요!”“프랑스는 독일 점령하에 4년간 존속했던 비시정권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민족반역자 2만6000명을 투옥하고 1500명을 사형집행했어.”“우리는 왜 못했어요?”“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달러를 훌쩍 넘기고도 아직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가 있군요.”“제대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데 있어.”“우리 국민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어요.”“그래도 여전히 공중도덕이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
그러니까 혁명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기존의 권력층을 뒤엎거나, 특정 정권을 타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본질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낡은 체제(앙시앵레짐)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고대 문명의 정치적 특성인 민주공화체제의 등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혁명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혁명이 반란이나 반역과 다른 것임을 잘 알 수 있다.루이 16세가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반란인가?”라고 물었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라로슈
“사명감을 갖고 우리 역사를 지키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아버지였어요.”상 주기는커녕 처벌했다면 학문의 자유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거다.“앞으로 어떤 학자가 학계의 그릇된 질서에 맞서 싸우며, 양심과 진리를 추구하려 하겠냐.”“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국내 권력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일파를 살려주고.”“왕처럼 군림했어. 독재한 죄! 민족 반역자들!”“처벌은요?”“처벌받기는커녕 요직을 독차지함으로써 신생 독립국 한국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지.”“광복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군요.”“흑백이 뒤바뀌고 사
금남면 장재리의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올라가는 길목에 밭이 있는데, 그 옆에 ‘개구리형 무덤’이라는 묘가 있다. 그렇게 부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옛날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지관이 있었다. 그가 짚은 곳에 묘를 쓰면“과거에 열 번이나 떨어진 낙방거사가 장원급제를 했다네,”“밥도 못 먹던 가난뱅이가 만석꾼이 되었다네,”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났다.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묏자리를 부탁하려 했으나 도저히 만날 수가 없단다. 그 지관은 간혹 명당을 잡아주고는“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해 준 것입니
“이만승은 역사를 왜곡시킨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이만승의 과오는요?”“권력 장악에 눈이 멀어 분단을 조장한 죄가 크지.”“친일도요?”“우리가 해방 후 식민지 잔재 청산에 실패해서 나라가 온통 친일파 수주에 들어갔는데, 학계도 예외가 아니야.”“식민사관의 대표적 이론인 한사군 학설과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임나일본부학설은요.”“이 두 학설은 사실 근거가 없어.”“그럼요?”“일본이 조선 침략을 용이하게 만들 목적으로 날조한 작품으로서 조선은 옛날부터 타율적이며 남의 지배를 받았다고 우기는 궤변에 불과해.”“그런데도 해방 후 우리
옛날에 장재리에 자린고비 하나가 살고 있었다. 절약하고 또 절약하면서 어찌나 열심히 일하는지, 재산이 나날이 불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한 사람을 보면“에이, 게으른 놈”게을러서 못사는 것이라며 아주 싫어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아끼는 딸 하나가 말도 못하게 가난한 총각을 좋아하여, 혼인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자린고비는 화를 내며 반대했으나 딸이 듣지 않아, 딸에게 혼수품 하나 해주지 않았다.그런 자리고비였지만 조상을 모시는 명당을 찾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어떤 지관이 신통하다네.”유명하다는 지관의 소문만 들으면 돈을 싸
“아버지는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하세요.”“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아버지는 칸트 철학을 갖고 와 홀로서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어요.”“지켜야 할 것이 최후의 보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야.”“…”“공존 불가능한 적군과의 전쟁이라면 또 모르겠지만.”“그런 경우가 아닌데요.”“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잔인할 뿐 아니라 지혜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