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인가? ‘밥을 먹는 자다’다. “인간은 생존과 존엄, 그 모두를 갖추어 먹어야 하는 식사의 존재”다. 먹이가 아닌 밥을 먹기 때문에 인간 삶으로 나아갔고, 밥을 통해 사랑과 질투를 느끼고 협력과 경쟁을 배운다고 느낀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 먹을 자격을 갖추고 사는지를 묻는 매서운 질문이다. 이야기는 이상할 것 없이 차분히 전개되지만 자세히 살피면 곳곳에 미스터리가 있다. 현대판 연산군보다 더한 극악의 폭군! 타락!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 추악한 박정환! 부당한 명령에 굴종하고, 자기 또한 부조리한 권력을 휘
버티고 버텼지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부패한 권위주의적 통치.검찰관: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본건 변호인은 본건 공소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 주시기 바랍니다./법무사: 사건과 관련 있는 건만 신문해 주십시오./변호사: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재판부에서 대답하지 않게 해도 좋습니다만…./법무사: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 진술 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변호사: 어떻습니까?/박선호: 다시
여기서부터 우리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마치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이것은 코끼리다’라는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이 코끼리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하는지는 무관심해지는 것처럼. 독재자, 박정환에게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이 이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나타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가 반민주주의 독재자로 여겨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3선을 반대하는 시위세력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고작 백년정도밖에 못 사는 인간의 삶!” 뜬 소문으로 치부하기엔 여러 경우가 많았다. 박선호는 차지철이 여자
박정환은 사유재산을 강탈하고, 강제로 정부에 헌납받은 재산을 사유화했다. 명목상 ‘부패한 기업인으로부터 헌납받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헌납은 엄연히 정부에 했는데 이 재산들을 박정환과 관계있는 재단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가 있다. 김지태는 자신이 설립한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일보 등의 지분을 장학사업을 위해 부일장학회에 출자한 상태였는데 부정축재법 위반 등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되면서 정부에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 부일장학회를 넘기게 된다. 강제로 재산을 헌납받은 것도 문제이지만,
박정환은 놀라울 만큼 상대방에게 잔혹하고 폭압적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순사들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할 때 쓰던 온갖 악랄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유신개헌에 반대하던 의원이 몽둥이와 주먹으로 테러를 당해 얼굴이 찢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김영삼 테러 사건,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김대중 납치사건, 윤보선 암살미수를 비롯한 온갖 사건을 일으켰다. 언론탄압과 공포정치와 공작정치를 일삼았다. 노동조합 결성을 막고 노동권 탄압,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시행하면서 박정환은 집회, 결사, 양심,
(495) 11 보수·친일·유신단죄 37상대를 짓밟고 기둥을 오르는 일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헛된 욕망의 끝이 어떤지 알게 해준 독재자! 박정환! 그가 남긴 유산은? 어떻게 일개 소장이란 자가? 기존 편대에서 군부대를 뽑아내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가 있었을까? 스스로가 주인이기를 애당초 포기한 자! 자존심과 긍지를 잃어버린 독재자!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살해사건! 주동자는 독재자의 최측근에 속했다. 윤리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대학생이나 자기 딸뻘 되는 여자를 데려다가, 저녁에 이렇게
간호장교 농락 역시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김재규의 변호사였던 안동일이 저서에서 “여군장교 이야기는 사실이다”라고 짤막하게 밝히고 있으며,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군장교들이 안가에서 술시중을 들었다”고 밝혔다. 연예인 여성이 가장 많았지만, 군 병원의 간호장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사단과 군 병원 등에서 ‘괜찮다’ 싶은 여군이 있으면, 여배우와 마찬가지로 궁정동 안가로 불러들여 대통령 수발을 들게 했다. 그는 여색에 빠져 미쳤다. “‘박정환은 청와대와 가까운 통합병원에서 안마를 받은 일이 많았다고 해요. 안마를
법정에서 김재규가 여인들의 리스트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말 것을 말했다. 군 법무관들도 사건과 관계없는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세간에는 이러한 박정환의 엽색 행각이, 여사의 사망 이후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행색이라고 하여 동정하기도 했다. 박정환의 여성 편력은 여사 생전에도 마찬가지 였으며, 여사 사후에 더 깊어진 것 정도로 인정되곤 한다. 대통령 박정환에게 여자를 조달하는 일은 본래 경호실이 시작했다. 5·16쿠데타를 거사할 때부터 충직한 경호대장이던 박종규가 모든 것을 관장했다. 박종규는 각하의 심기 관리에서부
소문으로 전해지는 새마을어머니 배구대회 추문사건. 해당 여성이 유부녀였고,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구체적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소문으로 치부하곤 한다. 박정환의 언급되는 여성 편력 중에서 소문에 근거한 것들도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독재자의 일이니, 사후에 얼마나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이 재미있었겠는가. 특히 권력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것에는 부담이 있기도 한 것. 그럴 필요도 못 느끼기에 제대로 된 문서로 전하지 않았을까? 박정환의 여성 편력이 심했다는 반증은 많다. 적어도 박정환을 좋
대한민국은 대한이라는 단어와 민국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대한은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고 민국은 민주공화국의 정치를 뜻한다. 한민족(韓民族)에게는 여러 나라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고조선, 삼국, 고려, 조선 같은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은 임금이 주인인 나라였다. 우리는 이것을 군주국가라 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한반도 역사상 새로운 나라가 된 것이다. 즉, 한민족(韓民族)에게 새로운 정치사상이 들어와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말일 것이다. 이렇듯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기
해괴망측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인이 생활고를 넘어 생사의 위협을 받고 있다.빈곤과 기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로부터 과연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불안감이다.백신 예방접종 중에도 확진자 수는 잦아들 기미도 없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감염자가 발생하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출현하는 형국이다 보니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로부터 벗어나 예전의 자유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암울함이 온 국민을 짓누르고 있다.가족 친지간 기념일에 이따금 찾는 왕래도 뜸하거나 끊기고 학연이나 지연, 친분이나
자본주의 경제성장 중심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결핍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호사스러운 사치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먹히던 유신시대!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 각종 반인권적 악법과 긴급조치란 초법적 조치를 통해 권력이 임의의 기준으로 반대파를 탄압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사법부마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철저히 유린됐고,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 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렸다. 박정환 정부는 정권 후반기로 갈
목조주택학교 6기생 왕목수가 아버지 집을 준 이야기장목수의 목조주택 학교를 진행하면서 “장목수 10일만 따라하면 목조주택 지을 수 있다!”라는 타이틀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정말 10일만 따라하면 집을 지을 수 있느냐, 에이 또 뻥을 치고 있네, 등등 사람들마다 이 타이틀에 대해 의문시 하는 게 사실이었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말 10일만 잘 따라 하면 목조주택을 지을 수 있는 게 맞다. 그동안 20여 년간 목조주택을 연구하고 집을 지어본 경험에 의하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아니 가능한 게 아니라 지을
박정환이 남긴 ‘조국 근대화’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국민들의 자율적 반성과 성찰능력을 빼앗아, 그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수신형 인간’으로 만들어버려 국가폭력에 대해 암묵적 지지를 하도록 했고, 이러한 광기는 전두환 체제에서도 이어졌다.제3공화국 시절의 인권은 역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박정환 군사정권은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는 일정 부분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은 ‘은폐’ 공화국이 되어갔다. 막연한 불안감. “태어난 것” 자체를 후회한다. 이 정도면 삶의 의미도, 기쁨도 없다. 그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는 아버지세대라고 생각해요. 식민지에 태어나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어린 날을 보내셨죠?”“해방되자 분단이 기다렸지. 끔찍한 좌우대립도 겪었고. 혼돈과 혼란, 공포와 불안 속에 청춘은 흘러가버렸어. 죽는 날까지 씻기지 않을 영혼의 상처인 6·25전쟁도 경험했지.”“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겠어요.”“그 전쟁터, 피난생활에서 시체와 비명 소리가 기억에 생생해.”“무서웠어요?”“두려움과 분노, 평온함이 교차되며 스쳐 지나갔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렬했지.”함흥에서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는 존
1999년 8월 환경부는 시멘트 쓰레기를 소각해 시멘트를 제조할 수 있는 걸 허가해줬다. 그러니까 1999년 이후에 지은 아파트는 거의 모두 쓰레기로 지어진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병성 목사님 책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나라 시멘트의 대부분은 일본 방사능폐기물, 철강 슬러지, 폐타이어 등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지난 2014년 12월 9일에 열린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동완 의원이 “1999년부터 지어진 모든 아파트가 발암물질인 쓰레기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2008
2대 독재자 박정환은 끊임없는 숙청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으며, 절대권력을 남용해 ‘새마을 운동’으로 지도자들을 공화당원에 가입 활동케 하는 등 정권유지체제에 적극 활용했다. 3대 독재자 전두환은 ‘겉치레와 화려한 행사’의 힘을 깨닫고 3S(섹스·스크린·스포츠)를 통해 집권 유지를 꾀했다. 그가 권력을 잡기위한 방편으로 ‘광주 학살’이란 만행을 저지르는 참극을 낳기도 했다.개인숭배는 이만승에 이어 박정환의 공포정치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겨우 잡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독재자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교묘한 속임수’,
박정환. 그는 쿠데타로 군최고회의장 2년과 대통령 18년 간 절대왕정 독재를 구가했다. 이어 전두환의 7년, 노태우 5년 이들 3인 군부독재체제는 무려 32년간이었으며, 이들 3인 독재자들은 철저히 우상화·신격화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차근차근 되돌아보면 독재자에 대한 숭배와 그 후과가 켜켜이 쌓여감을 알 수 있다. 독재자들에는 흐름이 있다. 이만승은 개인숭배를 이용한 독재의 서막을 열었고, 박정환은 이만승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보다 더한 최악의 독재자로 위력을 과시했으며, 냉혹했고 엄격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집권한 역대 대통
내가 교회 목조주택을 고민한 건 10여 전이다. 그때 지역에 있는 목사님이 교회 건축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던 중 교회처럼 건물이 크고 공간이 넓은 곳에는 H빔을 이용한 목조주택이 가능하다고 논의한 적이 있다.그 이후 여러 번의 상담과 구상을 했는데 보령에서 모 교회 목사님이 주류 창고를 사서 리모델링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둘러 보게 된 게 교회 건축의 시발점이었다.주류 창고에서 설치돼 있는 H빔을 보았을 때 번쩍하는 영감이 떠오른 것이다.내가 그동안 고민했던 그 H빔이 이미 설치돼 있었는데 그 상태서 교회 건축을 식은
보통 전원주택을 짓는데 땅을 구하다 보면 200평 내외다.세종시에서는 기본적인 땅값이 최고로 상승해 웬만한 땅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땅을 구입하는데 기본이 2억 정도가 된다.건축비야 무슨 집을 짓더라도 정해져 있지만 택지를 정하려면 교통, 투자가치 등을 고민해야 하는데 땅값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게 형성된다.요즘은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특히 세종시처럼 땅값이 오를대로 올라 토지주의 희망가가 매우 높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래되는 땅들은 별로 없는 걸로 알려졌다.이런 가운데 요즘 전원주택의 트렌드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