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올라오는 길가 외딴집은 비어있는 듯 늘 조용했다. 길에서 들여다보이는 닭장에 서너 마리의 닭이 모이를 헤집고 있지만 않았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주 지나치다 보니 칠 벗겨진 대문 틈 사이로 다리 짧은 강아지 두 마리가 낯선 나를 향해 짖기도 했다.그 댁이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 이사와 인사라도 나눌 겸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있다가 낮은 처마에 머리가 닿을까 허리를 약간 구부리신 어른이 나온다.“어떻게 오시었소?”“예, 저 위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그렇지 않아도 어느
어머니는 혼자서 빈집을 지키시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 모두 등교하고 우리내외 일터로 나가면 하루 종일 집에 계시기가 지루했을 것이다. 골목길을 누비는 자동차 행상에게 식료품을 구입해서 가끔 저녁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책도 읽고 TV도 보고 가끔은 옛날 사진첩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셨다.낮에 시간이 나서 일찍 귀가라도 하는 날엔 어머니는 몹시 반가워했다. 이런 저런 세상일을 묻기도 하고 옛날 얘기를 꺼내시기도 한다. 80연세가 넘었어도 총기가 맑고 건강도 좋아서 먼 길은 다녀오더라도 하룻밤 편안히 지내고
삼십년도 더 지난 옛날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의 삶이 풀잎 같던 시절, 더 성숙하고 여물어 져야 할 나이에 홀연 가장이 되고 보니 그때의 어려움과 적막함은 지금 생각해도 대책 없는 힘겨움 이었다 이제 오십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2녀1남의 자녀를 거느린 명실 공히 한 가장으로서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살 것을 훈계하고 있다.며칠 전, 예전의 그날처럼 찌는 듯 무더운 날씨에 아버지의 기일이 돌아왔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오후 들어 아이들 셋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성묫길에 올랐다. 서울 시내는
아내는 친정 오라비의 환갑잔치에 갔다. 아무도 없는 빈집을 지키는 호젓한 하루가 기울어 가고 있다. 검푸른 숲에서 들려오는 여름철새의 청아한 지저귐이 고요를 깨우는 고즈넉한 여름날 오후 산마을의 정취가 인생의 가을처럼 고적하다. 세월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더니 항상 젊게 살아갈 것 같던 인생이 환갑을 넘긴 지도 오래 되었다. 흘러간 세월 속에 내 청년 시절은 덧없이 흘러가 버리고 어언 고희의 나이도 지나게 되었다.고향 친구들을 만났다는 아내는 좀 늦을 것이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상념에 젖다보니 세상을 떠난 친
올여름에도 권여사댁 텃밭 자두나무에 빨간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다. 며칠 전부터 이 집 앞을 지나면서 빤히 보이는 자두나무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무성하게 달린 열매가 삼사일 전부터는 빨긋빨긋 익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것이 아니니 체면상 한 알 이라도 내 맘대로는 할 수가 없다. 그 집 앞을 오가면서 습관처럼 바라본 그 나무위에 잘 익은 자두 열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나를 유혹 하고 있었다.이러한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착한 권여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서 선생님, 시간 되시면 지금 자두 다 따가세요
오늘 새벽 해뜨기 전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나 밖으로 나왔으니까 여섯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는데 울타리 아랫부분에서 뭔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가까이 가보니 때깔 좋은 장끼 한 마리가 철망으로 된 울타리와 장미 넝쿨사이에 걸려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곧 날아갈 것 같은 자세라 가만히 행동을 보고 있는데 이 녀석은 울타리 쪽으로만 날개 짓을 하니 빠져나갈 수가 없다. 한동안 그러다가 숨을 고르는지 조용하다.순간 저 놈을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꿩 먹고 알 먹는다더니 새벽부터 이 웬 횡
아파트 건물 벽 아래쪽에서 새 소리가 요란하다.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름날 새벽인데 새 한 마리가 다급하게 울부짖는다. 저것이 사람의 목소리라면 위험에 처 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비명(悲鳴)일 것이다. 날카롭고 다급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보니 배롱나무가 서있는 잔디위에 곤줄박이 두 마리가 보인다. 한 마리는 바닥에 쓸어져 실신한 듯 날개만 퍼덕이고 또 한 마리는 쓸어져 있는 새의 날개 죽지 사이를 부리로 쪼아 대는 것으로 보아 경각에 달린 목숨을 살리려 응급처치라도 하는 것 같다.어쩌다가 이 지경이
이발을 한다는 것은 일상생활 중에서 비교적 작은 일이다.각자의 개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한 달에 한번정도 이발관을 찾게 되니 작은일 이라 하는 것이다. 헌데 이발이란 것이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기능과 솜씨에 따라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이발후의 상쾌함은 남자들의 호사 중에 하나인데 어느 한곳이라도 흡족치 않은 부분이 있을 때면 누구라도 태연할 수가 없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 일상생활 중에 작은 일인데 비해 개운치 않은 마음은 한참동안 계속된다.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부터 읍내에
친구 K는 나와 동갑내기 노년이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우리는 형편이 비슷하고 자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특히 노령화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수명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허물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오래 살기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어렵지 않게 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많은 어른들이 바라는 바와 같다. 언젠가 신문기사를 보니 30년 후 인간의 수명은 무한대라는 것이다.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낭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비보라는 사실에 그와 나는 공감했다. 현재의 평
비온 뒤 목련이 활짝 피었다. 비교적 길지 않았던 지난겨울은 극심한 추위가 없었던 탓에 예년보다 좀 이른 시기에 꽃잎을 터트렸다. 갓 피어나 무구하게 빛나는 백목련 꽃송이는 어머니가 아껴 입으시던 명주 한복 저고리 색깔처럼 곱기도 하다. 꽃에도 품격이 있다면 색깔이 원색이 아니어서 고상하고 웬만한 바람 에도 한들거리지 않아 중후한 꽃 목련을 꼽고 싶다.하얀색 목련은 대하기가 조심스럽다. 꽃잎이 금방 손때에 상할 것 같기도 하지만 대중 속에서도 빛나는 귀부인처럼 그 모습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목련은 피어있는 기간이 짧아 더욱 귀한 느
이웃 건물에 파스타 요리를 하는 식당은 개업한지 2년쯤 되었다.젊은 아내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남편은 서빙 외에도 남자의 손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했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음식을 먹은 적은 꼭 두 번이지만 전통음식에 길들여진 우리세대로서는 다시 찾고 싶은 음식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인 내외의 잘 생기고 편안한 인상처럼 자연스럽게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누구라도 호감을 갖게 되는 곳이다.이곳의 젊은 주인 남자는 나를 만나면 공손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뿐만 아니라 차 대접하기를 즐겨한다. 그 앞을
호젓한 생활을 즐기며 산중에서 보내던 수년 전 이맘때의 이야기다. 새벽 산책을 하려고 문을 나서면 꼬리를 치며 내 곁을 따르던 삼월이가 그날 아침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젖을 빨고 있는 어린 새끼들을 뿌리치지 못해 아직 자리에 누워 있는 것으로 알고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나 날이 밝아 해가 중천에 솟았는데도 녀석이 보이지 않아 결국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태어난 지 보름이 채 안된 새끼들의 어미젖을 찾는 모습이 딱해 보인다. 그러나 삼월이 는 오후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제 어미를 기다리는 강아지 다섯
아들 녀석이 제 누나가 살고 있는 홍콩을 다녀왔다. 여섯 살 난 조카가 성장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두어 달 전에 태어나 사진으로만 보아온 둘째 조카가 자라나는 모습도 궁금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은 홍콩이라는 화려한 도시를 관광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을 것이다. 체류하는데 금전적 부담도 없고 먹고 마시는 일이나 잠자리에 이르기 까지 전혀 돈이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아들은 특별 휴가를 얻어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방금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고 조금 후 가지고 온 짐 몇 가지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