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는 세모로 보이고 북쪽에서는 쌍봉으로 보이는 산에 ‘우설’이라는 신이 살고 있었다.비바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신으로 구름을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것을 좋아했다.“이번에는 지리산에 갈까하는데, 같이 가겠나.”백두산에 다녀오는 길에 계룡산에 들려 도술을 닦고 돌아왔다면서, 또 유람 길에 오르겠다며 번개신의 뜻을 물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어도 가족 하나 없었다.“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할아버지 왜 이제야 오시는 거예요. 얼마나 기다렸다고요!”하루 이틀만 외출했다 돌아와도 다른 신들의 가족들은 야단법석을
지금 나는 위험한 비탈에 서 있다.‘더 이상 버틸 수 없다’할 정도로 위험한 자세로 서있다.둔탁한 어둠이 내려앉은 이 밤에, 둔탁한 아버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목련과 벚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홀로 있던 아버지는 어느 봄밤이 이슥하도록 텔레비전 앞을 지켰을 것이다.우리의 현대사는 그 자체가 박탈과 결핍의 과정이야.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조국과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과 재산을 잃은 경험을 지나왔어. 삶을 통째로 잃은 이도, 목숨을 잃은 이도 있어.가난했던 시절 역시 불과 얼마 전의 일
아버지가 얼마나 자주 땀을 흘렸는지, 홀로 사는 고독함 보다, 부지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아버지의 세상살이, 너나 할 것 없이 살아가는 삶도, 사회나 나라도 마찬가지리라. 아버지는 틈틈이 채소를 키우면서 농사일에 비우하며 한 개인의 내면적 성숙이나 인간 삶의 의미, 세상 속 진리를 이야기 했다.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같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도, 배려와 나눔을 강조하는 데도 채소를 가꾸는 일은 좋은 소재였다. 더 나아가 지배층과 권력자의 무능과 불통, 부정부패와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데도 채소 가꾸기는 제격이었다.
금남교 쪽에서는 세모로 보이던 원수산이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 형제산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만하다. 정결하고 사이좋게 서있는데, 전해지는 전설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부자로 살면서도 원수처럼 미워하던 형제였기 때문에 형제산으로 이름 지어졌는데, 원수산으로도 왼수산으로도 불리기 때문에, 산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그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한다.인간들은 신이 하늘에서 산으로 강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산자락에 제단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신을 초대한 다음에 소원을 빌었다. 그때 거짓을 말하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
아버지는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자신의 의지와 노고로 작은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다.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채소, 과일, 그리고 그것들의 색과 향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내 나이 서른둘이나 셋쯤이었고, 아버지는 무려 육십이 넘은 때였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다 늙어빠진 아버지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정원 때문이었을까?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다는 아버지의 정원은 내가 지금껏 본 세상의 어떤 지상낙원 보다 눈부셨다.소년처럼, 소녀처럼, 단아한 몸매의 옛날
21세기가 시작되는 첫날, 2000년 1월 1일에 연기군 남면 사람들은 원수산 중턱에 ‘원수산유래비’를 세웠다.그 비에는 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원수산이 명산으로, 남쪽으로는 성제산 토성과 금강이 보이고, 동서에는 전월산과 국사봉이 솟아있으며, 북쪽에는 당산성과 미호천이 있다는 풍수까지 설명했다. 아울러 원수산의 별명으로 부모산 형제산 문필봉을 소개했는데, 그것들이 원수산으로 개명되기 전의 이름인지 같이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려 충렬왕 17(1291)년에 원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곳까지 도망쳐 온 반란군을, 고려군
전통적 풍수설이 말하는 좋은 도읍지란, 전후에 안산(案山)과 주산(主山)을 두고, 좌우로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는 산줄기가 이어져야 한단다.그 위에 주산과 안산 사이로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면 더할 나위 없는데, 세종시가 바로 그런 풍수란다.정부세종청사는 국사봉과 괴화산 사이로 금강을 흘려보낼 뿐 아니라, 국사봉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청룡의 기세로 전월산으로 향하고, 우측 산줄기가 백호의 기상으로 장군봉 쪽으로 뻗어나는 곳에 위치한다. 행복도시를 계획한 풍수가들은 그런 풍수에 맞게 국사봉과 전월산 사이의 남면과
모든 정원은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와 닮았다.그래서 세상에는 이런 진리가 통용된다. 어떤 면에서 상상력을 좇아 살아 있는 자연의 일부분을 만들어내는 정원사의 일은 글 쓰는 일과도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누구보다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던 아버지를 보며 그걸 알았다. 심지어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특히 늙은 아버지가 허름한 옷을 입고 꽃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잡초를 뽑는 사진을 보며, 왜 이 모습이 내게 이토록 아련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생각했다.정원일의 즐거움이라는 아버지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나는 유감스
옛날에, 하늘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신이 내려와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그 옛날에, 신이 자주 내려왔다는 국사봉 자락에, 돌이 많아 독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안옥하게 묻힌 곳으로, 오목한 항아리 같아, 도술이 높은 신이나 덕이 많은 선비가 은거하는 곳 같다. 멋모르고 들어선 사람이 있다면 벗어나는 길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그 독골에 연씨 성을 가진 쌍둥이 형제와 전씨 성을 가진 쌍둥이 자매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쌍둥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며, 부부가 될 팔자라고 말했다. 말이
삶은 발가벗겨지고 법 밖으로 추방되는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하면 된다’의 노력으로 출발해 ‘할 수 있다’는 자기 계발을 지나 ‘해야 한다’는 노력으로 결국 삶을 파괴하는 파국에 도달했다. 안중근 보다 더 흉하고 악한 운수는 없겠지.그를 의사(義士), 의로운 선비로 기린다.두 글자를 따져 읽어보자. 의(義)! 용사는 제 목이 땅 위에 떨어지기를 각오하며 살고, 선비는 굶주려 죽을 각오로 산다는, 그 길 아닌가!신념을 지키는 사람은 위대해! 그런 사람은 투철
세계는 충분한 이유를 단시일 내에 설정하지 않아.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쌓은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어떤 이유를 만들어 줘. 한 인간에게도 그런 보수주의가 필요해. 인간은 마치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이 오래 오래 되풀이되는 것처럼 일정한 일을 반복함으로써 장엄한 업적이 돼. 오랜 시간은 죄수가 교도소에 갇혀 있는 시간으로도 뜻이 깊은 것입니다.삶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 삶의 기간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종교는 언젠가 다쳐올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시는 지난 2012년 탄생했지만 연기군과 청원군, 공주시 등 그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그 명맥을 잇고 있다.그럼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관심을 갖고 오랜 전통과 문화 유산은 자칫 외면하고 소홀하기 싶다.오랜동안 우리의 역사를 연구해온 권오엽 명예교수를 통해 세종시의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소개코자 한다.□전설의 문제유성에서 세종시로 들어오는 오른쪽 차창으로 보이는 것이 전월산과 원수산이다.260미터와 251미터로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돌출된 산세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충동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북쪽나라 지도자는 우리는 끄덕없다, 라고 하면서 여전히 폭탄만 흔들어대고 있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남쪽나라 지도자와 힘센 이웃나라 지도자는 폭탄을 그렇게 흔들면 국물도 없다고,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북쪽나라가 망할 거라고 하면서 남아도는 쌀 창고 문단속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쪽나라는 망하지 않았다.그 대신 30만명이 굶어죽었다.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노인이었다. 물론 그때 순희 외할아버지와 어린 철수도 굶어죽었다. 옥수수죽도 못 먹고 배고파 죽은 외할아버지와 철수는 퉁퉁 부은 누런 얼굴에
그때도 그랬다. 남쪽나라는 30만명이 굶어 죽은 것은 전적으로 북쪽나라 지도자 탓이고 남쪽나라와 이웃나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고소하다고 박수를 쳤다.어쨌든 그 후 남쪽나라 순희는 다시는 북쪽나라 외할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북쪽나라 철수도 남쪽나라 고모할머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절망은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 있는 어떤 불가피한 탐구입니다. 이런 시지프스적인 고뇌를 의식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허황한 일이라는 것을, 희망이 얼마나 어려운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과 일치시키지 않으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짓눌리고 핍박받는 과정에서 중립(中立)의 이상을 꿈꿔왔으며, 국민 감시체제를 휘두른 군부독재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파간 파벌싸움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선거에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적으로 목도했다.그때도 그랬다. 옛날 옛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북쪽나라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남쪽 나라가 있었지. 오랫동안 두 나라는 한 나라였어.북쪽 나라엔 남쪽 나라 순희의 외할아버지가 살았고, 남쪽 나라엔 북쪽 나라 철수와 고모할머니가 살고계시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나라는 둘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게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여 내 생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마술이다.그러면, 내가 만들어낼 조각품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내 손에 들려있는 정을 부단히 움직이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나이가 들수록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은 왜 일까? 나를 찾아온 이 누구인가?그 또한 ‘나’다. 비로소 저만치 ‘나’를 보기 시작한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모호한 상태, 아무리 노력해도 후련하게 해결 안 되는 좌절과 고통의 시간, 이러한 상황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인생일 터.이상(李霜)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문기(文氣)와 신기(
한 줄 한 줄이 전전긍긍이었으므로 내 글 들을 그 흔적들이라고 해두자.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인형이 아닌, 진짜 토끼가 돼 달빛 아래에서 산책하고 싶어 하는 인형, 작은 토끼의 모험을 담은 그림책이 되고 싶어. 작은 토끼는 달빛 아래 정원에서 진짜토끼들을 만나지만 무시당하고 말았어.내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눈물을 떨어뜨리는 작은 토끼에게 여우가 다가와 “인형인 게 뭐 어때서? 나도 하나 갖고 싶은걸” 이라고 위로했어. 인간의 위선과 가면이 벗겨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곡예를 생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노래를 갖기 위해 나는 멈출 수 없어! 우아하게 높여줄 나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어!우리는 사랑을 환대하며 곧 있을 고통을 예감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으면서, 두 팔 벌려 받아들이지. 그건 우리의 죄명이 사랑으로 둔갑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이야!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는 죄인이 아닌 자가 없어!사랑의 거처가 감옥이 아닌 경우가 없어! 사랑!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넓게는 동시대의 사람, 또 범위를 좁히자면 문단의 동료들. 전에는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이상(李霜)과 그의 ‘날개’가 적어도 100년을 앞서 갔던 아방가르였음을 어찌 의심할 수 있는가!누가 이상(李霜)을 의심하는가! 이상은 제국의 시민으로 웅크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불안과, 권태와 무기력의 시대를 벗어나길 기원해주었어. 나는 그들의 믿음과 가치관을 사로잡는 대신에,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자의 울타리를 쳐둘 권한을 주었어.온전한 제 공간을 설정하고, 또 향유하는 일은 너무나 달콤한 법이야. 일단 그 매혹에 빠져들고 나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으며, 남들은 너무 조금 알고 있
오래도록 지켜보아도 움직이지 않는 무엇이 없습니다.아, 하나 있습니다. 나비입니다. 폐결핵에 걸린 덥수룩한 수염의 모던보이, 이상(李霜)은 부잣집 꼽추화가 구본웅과 어울려 밤새 술에 절어 기방을 전전하는 기행청년으로, 알쏭달쏭 아라비아 숫자와 건축·의학 용어로 해독 불가능의 문구로 시를 쓴, 이 땅 최초의 모더니스트 작가였습니다.이상(李霜)은 오만과 천재성에서 비롯한 자의식으로 식민지가 되던 해에 태어나 스물일곱 죽을 때까지 근대라는 화두에 온몸을 부딪치며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말년에 자신의 문학을 펼칠 포부 하나로 도쿄로 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