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독할 수 있는 건, 일본군이 체포하거나 살해한 농민군의 신상명세뿐이었는데 신문기사처럼 이름 옆에 나이가 병기되어 있었제.”“음.”“기이하게도 십대나 이십대는 거의 없었고 삼십대가 조금, 나머지는 사오십대였제.”“지금보다 평균수명이 한참 낮았던 시대였잖아?”“기걸 고려해본다면 대체로 중장년을 넘어 노년이라 해도 좋을 법한 사람들이었잖노.”“…”“문득 깨달았제.”“무슨?”“와, 젊은이들이라해서 죽창을 들고 나서고 싶지 않았을기가?”“그래, 할아버지와 삼촌의 뒤를 따르고 싶지 않았으랴. 그이들을 가로막은 건 다른 누
2017년 4월 16일에, 세종시가 주최하는 ‘제15회 복사꽃 전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서울 사는 정해중이, 오봉산 자락을 달리며 하늘에서 들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옛날 옛날 아주 옛날, 천제가 신과 인간을 공평하게 다스리던 그 옛날에, 천제는 많은 왕자와 공주를 두었는데, 다섯 째 왕자 연천은 오봉산에 내려가 유람하는 것을 즐겼다.“그렇게 천하를 아는 거야말로 천자의 덕을 닦는 길이지.”천제는 연천을 기특하다며 칭찬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날이었다. 오봉산 자락에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들이 자아
“고개를 들면 해 뜨기 직전에만 불어오던 바람이 구름을 몰아가고, 어둠이 걷히며 하늘이 열리는 걸 볼 수 있었제.”“…”“검푸른 허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을 볼 수 있었고마.”“…”밤새 숨죽여 흐르던 시냇물이 수런대고 그 위로 물안개보다 짙은 밥 짓는 연기가 흘러갔다. 그 길에서 그와 처지가 비슷한 조무래기들을 만났고, 벌써 바지게 가득 꼴을 쟁여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와 마주했다.“내는 아버지처럼 늙고 싶었제.”“…“결정적으로 농민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더 이상 내비치지 않게 된 건, 이십대 후
‘한밭’이라는 고유명이 있는데도 대전으로 부르는 일에 흔쾌히 찬동하지 못하던 나는, 민족의 명군 세종을 지명으로 하고, 거리나 동네의 이름도 순수한 우리말로 지었다는 말에 끌려, 구경 한번 온 것이, 세종시 종촌동에 살게 된 인연이었다.제천을 앞에 두고 완만하게 높아지는 구릉지에 조성되는 단지에 ‘민마루’로 시작되는 학교들이 세워진다는 것도 이주를 결심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었다.그런데 2015년 초에 입주해보니, 주소는 가재마을과 종촌동을 병기하는데, 학교의 이름들은 처음에 안내할 때와는 달리 ‘종촌’ 초·중·고등학교로 바뀌어 있었
전월산에 오르면 금강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보고 싶어 20분 쯤 걸어 오르면 며느리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는데, 아무리 보아도 며느리가 연상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며느리 바위로 불리데 된 유래를 설명하는 간판이 서있다.옛날에 마음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있었는데, 심성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를 보게 되었다. 어느 날 백발 도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했는데, 시아버지가 스님의 바랑에 퇴비를 한 삽 넣어주었다. 그것을 며느리가 보았다. 며느리는 마을을 벗어나는 스님께 쫓아가 시주를 하고 시아버지의 용서를 빌
기건 아마 이 슬픔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니, 굳이 반추하여 견고한 기억으로 남길 필요가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제. 기러나 세월이 흘러서도 내는 그날 밤 느꼈던 쓸쓸함과 두려움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고, 그 탓에 기억은 견고해졌제. 기런 순간은 언제나 불현 듯 찾아왔제.”“…”“어느 날 무심코 집안 구석에 버려진 낡은 목장갑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 목장갑에도 집게손가락이 없었제. 기러면 집게손가락 없는 목장갑을 끼고 다니던 아베가 떠오르게 마련이었고, 뒤이어 여지없이 그날 밤 동생들과 마루 끝에 앉아
전월산 등성이에는 500보 정도의 길이 있다. 코끼리 등처럼 오목하게 나있는 길은, 금강과 미호천이 합쳐지는 북쪽과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남쪽을 내려다보는데, 동에서 서로 가는 길목에 상려암이라는 바위가 있다.옛날에는 성왕봉으로도 불렀던 모양이다. 그 길을 걷다보면 앉아보고 싶어지는 바위인데, 그 바위에는 이런 전설이 얽혀있다.옛날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임난수라는 장군이 전월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산자락 기슭에 30여 가구 올망졸망 모인 동네, 읍내에서 사십리는 더 들어가는 마을이 소년이 자란 곳이다. 산골 소년이 자라고 늙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바,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꽃, 춘화 걸려있던 역전 이발소와 밤마다 등 멱을 하러 엎드리던 담장 너머 봉순댁, 오로지 농사만 아는 일자무식 아버지였다.그러한 당신께서 멀찍이서 외치던 소리가 있었다.“봉준아, 소 받거레이.”슬픔과 고통으로 한 번 구겨진 사람은 제 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는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해를 기억한다. 나른
산딸기는 아무래도 지상에 내려앉은 붉은 저녁노을의 식솔들이었다.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기라도 하듯, 꽃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득히 멀어진 그 모든 곳으로 손 뻗으면 땡땡하게 뭉친 추억의 종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은, 산딸기. 댕그랑, 댕그랑… 들길은 아이들이 흰 구름과 누가 빨리 나가 내기라도 하듯 달려가는 길이다. 하굣길 아이들이 신발주머니를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한 소쿠리 감자를 캐어 머리에 이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그런 들길에 여름내 염소처럼 얼
전월산의 용샘 전설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이무기가 용이 되겠다며 100년이나 기도했으나 임산부가 보았기 때문에 승천하지 못했다는 것이나 버드나무로 변한 이무기가 반곡마을 여인들을 바람나게 하면서 양화리 사람들은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 등이다.아이가 태어나고 씨앗이 생겨야 삼라만상이 번식하고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세상도 존속할 수 있어, 임산부는 신성하다. 그런 임산부가 쳐다보았기 때문에 승천을 취소했다면, 옥황상제가 임산부를 부정하게 보았다는 것으로, 세상의 번성과 발전을 막는 것이다. 승천이 좌절된 이무기가 버드나무로
천제가 하늘과 땅을 다스리던 옛날에, 전월산을 끼고 흐르는 금강에 진수라는 용이 살고 있었다. 기운이 넘쳐, 물이 불어나면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데 진수는 거슬러 올라 다니며 즐긴다. 머리에 뿔이 나면서 눈은 귀신, 목은 뱀, 배는 이무기, 등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처럼 변해갔다.자랄수록 힘이 넘치는 진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강물을 오르내리다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그처럼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진수는 전월산 쪽을 바라보더니“저 산을 뚫고 하늘을 날아보아야겠다.”전월산을 뚫어보겠다고 외친
한 모금의 물을 삼키고 수저를 들었지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마치 생쌀을 삼키는 것처럼 김치찌개를 대, 여섯 수저를 뜨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봉준이는 오늘도 식당에 나갔다. 낮엔 주로 하림이가 맡고 밤에 봉준이가 교대로 나갔다.하림이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은 목이 좋은 아파트 밀집지대의 사거리, 큰 대로변에 있어 손님이 제법 꼬였다.젊은 시절이 고단한 것은 실패가 많고 확실함이 적기 때문이며, 젊은 시절이 소중한 것은 날개를 키우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애환과 세상살이의 고난함을 투박하고 무뚝뚝하
마음이 평온해진 나는 이렇게 나를 다독였다.“니 엄마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맘먹은 뒤부터 죽음도 평화롭게 받아들이게 됐다. 조문객들이 느끼는 감동과 추모도 배가(倍加)되는 것 같았지.”짧았던 어머니의 일생… 고뇌, 외동이의 기쁨… 이제껏 몰랐던 어머니의 삶을 그 제서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어머니를 보낸 지 까마득한 지금, 아버지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이다.아버지의 수많은 논문과 저서는 진보 학회의 발자취를 되새겨보는 안내서로 충분했다. “생전 내 인생을 정리해 두고, 나중에 유언과 함께
전월산 꼭대기에 용천이라는 샘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산을 뚫고 금강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샘에는 희검은 구름이 비친다. 내려다보는 도중이라도 용이 치솟아오를 것 같아 오싹해진다. 누가 이름 지었다 해도 용천이라 했을 것이다. 신비롭기 그지없어 자랑할 만한 전설이 있었을 법한데, 안내판에 기록된 내용은 그렇지 않다.금강을 끼고 우뚝 솟은 전월산 상봉에 용천이라는 샘이 산속으로 뚫려 있고, 금강까지 물이 흘러, 이무기가 금강에서 자라 용천까지 올라와 백년을 기도하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승천하게 된다고 하였다.고려 초엽
금강과 미호천이 합류하는 합강리에 연기라는 여신이 살고 있었다.아주 예뻐 많은 신들이 혼인 맺기를 원했으나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어느 보름날 밤, 뒷산에 올라 하늘에 뜬 달을 보며, 하늘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내가 그 뜻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달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연기에게 말을 거는 신이 있었다. 달나라의 왕자 오성이라 했다. 연기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히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통한 것이다. 오성은 산등이 길을 앞서 걸으며 달나라의 이야기를 한 없이 들려주었다.
“어느 날, 혼자 앉아 있는데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왔다. 너무 슬퍼서 소리 내서 엉엉, 사나흘 간 계속 울었다. 막연히, 내 안이나, 밖에나, 만져 볼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언제까지 슬픔에 목 놓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조문보를 만들자는 지인의 말에,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흰 종이에 니 엄마의 인생을 써내려갔다.”“…”“니 엄마는 ‘너와 함께한 삶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곧 영생을 얻게 된다니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니 엄마는 평생 기도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다. 나와 함께 너를 키워 온 삶, 짧은 나이에도 매일 매일이 처음인 것처럼, 새벽 심장 통증을 호소하더니 구급차 안에서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났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지, 지금도 가슴에 바람이 쌩쌩 불다 나간다.”홀로 피란와, 젊은 나이에 처녀와 결혼해 나를 낳아 살았다는 아버지의 사연에 다들 뭉클해 했다.“어머니의 빈자리가 낯설었어요.”“그래, 니가 갓 초등학교에 들어 갈 때였으니까…”“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갔어요.”“…”“아무도 모르게
금강 가까운 곳에 붓모양의 산이 있었다.어린 연부가 자주 놀러 다니는 산이다. 진달래꽃이 활짝 핀 봄날에 연부는 꽃구경을 갔다가 바위에 앉아서 글을 읽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의 글 읽는 소리가 듣기 좋아 매일 같이 다녔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인은 보이지 않고 책만 놓여 있었다. 그것을 들추어 보았으나 알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했다.“왜, 글을 배우고 싶으냐?”언제 나타났는지 노인이 뒤에 서서 물었다.연부는“예”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연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손가락으로 산등
아버지는 일제말기, 해방 직후, 한국전쟁, 권위주의 정부시대를 겪었다. 한국사 교육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가 단일민족론이다. 적어도 제도권 교육에서는 그렇다.그래서 우리는 한반도 거주자의 역사가 한의 혈통과 문화로 면면하다는 사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우리민족은 한이 많다.”“고통을 겪고 한이 많은 민족은 이를 인류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어요.”“사회갈등, 남북문제 모두 정치보다는 함께 감동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난 네가 이런 일을 해줬으면 한다…”아버지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위로까지는
금강을 바라보는 산이 있는데, 그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효자가 많았다.그들은 부모만이 아니라 동네 어른들을 하늘처럼 섬기는데, 전독해라는 아이만은 달랐다. 그는 부모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도 자기야말로 효자 중의 효자라는 말을 했다.“어미닭은 불에 타죽으면서도 날개로 병아리를 보호한다잖은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부모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위해 말썽을 피운다. 그런 내가 효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부모를 위해 말썽을 피운다는 말을 하며 어린아이를 때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