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임난수는 전월산에 올라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능선길의 바위에 앉아 북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라에 대한 충성만을 생각하면 살았던 과거가 생각나기도 하고, 채석강에 나가 청운의 꿈을 품고 무술을 연마하면서“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겠다!”기개를 다졌던 소년 시절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관리들의 탐욕을 욕하며 죽어가던, 제주도 주민들의 절규처럼 들리면, 온몸의 힘이 쑥 빠진다.“조금만 백성을 아꼈어도 반란군에 가담하는 일은 없었을텐데.”그런 생각이 들어, 가솔들은
“보수적인 부모는 아이를 일류대에 보내려고 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아이를 의식 있는 일류대생으로 만들려고 하제.”“누가 그랬어?”“고래가 그랬제. 하! 하!”“맞는 말이야.”“진보적인 부모 역시 아이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걸 주입하고, 별반 다르지 않고마.”“굳건해지는 대학 서열화, 치열해지는 무한 경쟁 구조에 놓인 청소년들은 점점 더 지쳐가는 것이 아닐까.”“한국에서 사탄이 굴리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시스템으로 두 가지를 꼽제.”“그래?”“응. 하나는 교육시스템, 또 하나는 비정규직 시스템이고마.”이 무시무시한 시스템에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그때까지 이성계를 욕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천명을 받은 이성계 장군이시다.”칭송하며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사람, 죽어도 역성혁명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로 갈라졌다. 그런 가운데 임난수와 정온은 ,“충신이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은거의 길을 선택했다. 은거라면 길재가 유명한데, 그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과 같은 마을에 살며 동문수학한 사이였는데도, 도움을 요청하는 이방원에게“노모를 모시느라 여유가 없다네.”부모의 부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임난수 장군은
“기 아이가 실력을 갖추게 된 과정을 파악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교육 방향을 잡아가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제.”“그래도 타고난 천재성을 무시할 수는 없어.”“긴데 명백한 것은 시간과 환경이라는 두가지 명제고마.”“어떤?”“아이의 집중력과 인내심, 부모의 성향, 함께 자란 또래집단 이제.”“영재의 내외부적 조건?”기래, 기게 앞으로의 교육과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지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제.”“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음악신동이라 불리는 모차르트도 그랬어.”“기래, 모차르트도.”“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
“우리네 삶속에 맛있던 보리밥은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 케도,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마…”살다보면 때로는 태풍도 만나고 가뭄도 겪지만, 언제나 봄에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씨를 뿌린다는 것도 베웠다. 그리고 점차 커가면서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와 올챙이가 며칠 못가 죽는 것을 보았다.아이들에게 환경과 생명에 대해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시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곤충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이런 시설이
목호의 난을 정벌하고 돌아온 임난수 장군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공민왕은“장군의 전공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한쪽 팔까지 잃으며 발휘한 무공을 치하하며 봉선대부로 책봉했다. 그런데도 장군의 얼굴에서는 밝은 표정을 찾기 어려웠고, 사색하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런 장군을“팔을 잃으신 충격이 큰 모양이야.”동정하며 위로하려 했다. 가족도 장군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장군의 말수가 줄어든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목호의 난을 정벌할 당시“지옥의 사자보다 더 징그러운 관리놈들.”이라고 욕하며 대들던
정부청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세종시에 거주한다는 것 자체가, 임난수 장군의 은덕을 입고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전월산 등성이길에는 임난수 장군이, 이미 망한 고려를 생각하며 앉아있었다는 상려암이 있고, 그 산자락에는 그분이 살았다는 숭모각이 있는데, 그 대문 앞에는, 그분이 심으셨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오백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그뿐만이 아니다. 금강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장군의 아들이 세웠다는 독락정에는 세종대왕이 내렸다는 ‘임씨가묘’라는 액자까지 걸려있다.안내판에 의하면 공조전서까지 지낸 장군은, 이성계가 고려를
범직이천을 따라 오르다 오가낭뜰이라는, 향수에 젖게 하는 이름을 가진 근린공원에 이르면, 잘 정리된 운동기구들이 지나는 객을 유혹한다. 그 유혹에 이끌려 기구에 올라타려는데,“이리 와서 내 말 좀 들어보시게.”누군가가 말을 거는 것 같아 둘러보는데, 언덕의 숲이 바람에 흔들리더니 “나는 오가낭이라는 신이라네, 300년을 살았기 때문에, 곧 조상들이 가신 세계로 가야 하는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네.”라는 말이 들려오더니, 계속해서그러니까,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남침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이 서울을 지킬 테니 안
“낭만으로 가득했어.”“그람, 풍금 잘 치고 노래 잘하는 생글생글 여선생님은 무얼 하고 계실꼬, 풍금도 심심할끼고마…”선생님 손끝에서 나오는 풍금소리는 시골 꼬마들을 얼마나 매료했던가, 목이 마르던 운동장을 지나는 선율을 따라가면 ‘순이’가 앉아있던 맨 끝 양철지붕 교실이 손에 잡힐 듯 했다.거기 순이의 머리카락을 더 나부끼게 하던 풍금 소리가 있었다. 천상의 소리인…여름 방학 숙제는 잡초를 뽑아 말려서 가져오기, 말린 잡초는 퇴비로 만들어져 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방학 때도 번갈아가며 학교에 가야했다. 꽃밭
옛날에, 요임금이 세상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그 때는 해가 열 개나 있었는데, 모두 한꺼번에 나와서 비추기 때문에 산과 강의 초목들이 모두 말라비틀어졌다.“임금님 더워서 못살겠습니다.”신과 인간들이 더워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쳤다. 그러자 요임금이 활을 잘 쏘는 예를 불러서 “아홉 개의 해를 쏘아서 떨어뜨려라.”하나의 해만 남기고 나머지는 떨어뜨리게 했다. 예의 화살을 맞고 떨어진 아홉 개의 해는 동해에 있는 복숭아나무 아래에 머물며“하루만 일하고 아흐레는 쉬니까, 더 잘 되었다.”편안히 쉴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복숭아나무 밑에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전 국민 기생충 감염률이 80%를 넘나들었제. 거리에서 약을 팔던 약장수들이 구경하던 아이 한 명을 무작위로 불러내 회충약을 먹이면…”“먹이면…”“그 아이 항문에서 회충이 떼거지로 배출되고 했제.”“봉준아, 네 말이 맞아. 끔찍해.”“같은 반 아이들 중 상당수가 기생충에 걸려 약을 먹어야 했지만, 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양성으로 나온 적이 없었제.”“놀랍네.”“그때는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겐 장차 기생충도 가르치는 생물선생이 될 자질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방법으로 세워진 것이 돌탑인데, 그것이 국사봉에도 있다.그런데 2017년 3월 28일에 본 국사봉의 돌탑이 훼손되어 있었다. 벼락을 맞거나 바람에 날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무너뜨린 것이다. 훼손돼 흩어진 돌멩이들을 보는 순간, 20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나는 딱 20년 전에 축지법을 실행해보겠다는 100일 계획을 세우고, 경기도 하남시의 검단산을 훈련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30여 일간 뛰어서 오르내렸더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저사람 축지법 하는 것 아냐!”내가 축지
“그 작은 언덕 같은 곳, 거기 벚나무 앞에서 우리 반 단체 사진 찍었지 안노? 바람결에 벚나무가 마구마구 흩날렸는기라.”눈앞에 초췌한 벚나무가 금세 봄날로 돌아가 연분홍 꽃들을 면사포처럼 쓰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랬듯이 선생님과 정답게 사진을 찍으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내 사랑, 그대들은 겨울방학 동안 몸 건강히 잘 지냈나요?”“우리 친구들이 보고 싶었던 거예요.”그렇게 선생님은 묻고, 대답했다. 방학 때 한 일 중에 하나를 답으로 기대했던 선생님은 또 한번 놀란다.한 달여 남짓 아이들과 떨어져 있으며 우리들의 소중함
금강을 만들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자가 뿌린 씨앗들이 물고기나 물풀로 변하기도 했으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것들도 있었다.그 중의 하나가 두둥실 흘러가다가, 새로 합류해 들어오는 미호천 물결에 공중으로 튀어올랐다.“두 물길이 합쳐지는 합강리구나.”공중에서 주변을 살펴보다 내려온 씨앗이 밀려오는 물결에 휩싸였다.“아 포근하다!”물결에 휩싸여 아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씨앗을 감싸안은 하얀 물방울은 소용돌이치는 물길에 따라 가라앉았다 떠올랐다하며 투명한 막을 만들었다.“야, 알이다. 금강과 미호천의 정기가 합쳐진 알이다.”검은
학교는 신축교사를 짓고는 일본식 기와를 얹은 옛날 교사(校舍)를 도서관으로 꾸며 놓았다.서고라고 해봐야 큰 교실 두칸 정도였지만 그곳은 봉준이에게 책의 바다였다.교육을 망치는 두 가지 착각이 있다.뭔가 도모하다보면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결국은 맺고야 마는 지도자와 추종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각이다. 자신의 영향력을 중히 여기지 않는 지도자는 역할을 한정하면서 사회갈등을 방치한다.그리하면 약자들이 큰 해를 입는다. 강자에 대항할 조직재화마저 갖고 있지 못한 약자들은 지도자, 특히 교장 같은 지도자의 개입에, 강자와의 싸움에서 살아나
“조용히 임기나 마치는 것을 목표로 보신책을 궁리한다면, 과연 우리 교육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교장 선생님예, 확고한 교육적 신념을 가지셔야 되겠꼬마 예.”“암, 저마다 자율과 책임경영의 기조 위에서 학교를 살려내는 일에 진력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 강화를 도모해야 돼요.”경악스럽게도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공감, 참여, 실험, 미래, 이 네가지가 필요했다. 봉준이 에게 용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나름의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이 있어서였다.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틀림없이 먹구름이다.좋지 않은 징조를 비유할 때 등장하는 먹구름
금강과 미호천이 합쳐지는 곳을 합강리라고 부르는데, 두 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에 유래하는 지명이다. 그와 비슷한 말로는 아우내, 두물머리, 양수리 등이 있는데, 서로 다른 것이 만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의 키가 작다고 웃고,저 사람은 그 사람의 키가 크다고 웃네신이나 인간만이 아니라 짐승도 처음에 만나면 서로 경계하고 의심하지만, 그런 만남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다. 하늘의 환웅과 태백산의 웅녀가 만나니 단군이 태어나고하늘의 해모수와 압강의 유화가 만나니 주몽이 태어나고하늘의
세종시 가락마을은 새골, 뜸이기, 가락골, 솔밭티골 등으로 불리던 마을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다.단지 한가운데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야산이 있다. 조용한 산골이었던 옛날에는 별빛이 쏟아지는 낙성산이라고 불렸음직한 산이다. 아파트 단지라면 소란스러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단지 가운데에 위치하는 이 산에 들어가 보면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단지의 오아시스나 공원이라 할 수 있는 그 산에 별빛전방대가 있는 데, 그 자리에 별빛 전망대가 들어선 것은, 태초에 천제가 그렇게 정해두었던 것 같다.칠석날 저녁에 손자와 같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봉준에게 물었다.“곤충실이라예?”“암, 그렀네. 왜 어떤가…, 실력을 한번 발휘 해보게. 아주 멋진 표본실과 함께 곤충실을 꾸며 보는 것을 말이야. 하! 하! 하!”“표본실을 한다고예?“음, 그렇지. 하! 하! 하!”교장의 위엄 있게 말하는 태도에 봉준이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그랄라 카먼, 곤충 채집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고마예.”“무슨?”“예를 들어, 나비라 할 경우에 수십, 수백종에 이릅니더. 희귀종을 채집하려면 섬이나 깊은 산중으로 가 보아야 하구예.”천천히 봉준이 얼굴을 째려보던
“짝짓기를 마치면, 암컷이 배 끝의 산란관으로 나무껍질에 구멍을 뚫고 줄줄이 알을 낳는기라예.”“음, 그러면?”“매미가 알을 낳은 나뭇가지는 곧 말라 죽어서 눈치 채기 쉬워, 알을 수백 개 낳지만, 그 가운데 무사히 땅으로 내려가는 애벌래는 절반도 안 돼예.”“에그 불쌍해라.”“땅 속에서 나무뿌리 즙을 빨아 먹으며 살다가, 마지막 굼벵이 시기에 다시 나무로 기어 올라가 기어 나온 바닥에는,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이 빵빵 뚫려 있고마예.”“거참.”“마지막 허물을 벗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예.”“오, 그래요?”“허물에서 막 나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