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평소 전선생 답지 않게 나를 실망시키려하는 거요?”“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비리문제는 해결되어야 합니더!”목에 잔득 힘주어 말했다. 그날 봉준이와 함께하면서 현장 교육의 문제는 내가 평소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고 심각했다.“프랑스의 교장들은 파업을 자주한다예.”“교장이 파업을 하는 이유가?”“공문 처리건수가 너무 많다며 줄여 달라는 게 이유아이가.”“그럼, 다른 나라는?”“독일의 교장은 학교에서 가장 바쁘고마.”“교장이 바쁘다니!”“담임교사가 결근을 하면 수업을 해야 하고, 학교 행사도 직접 맡아 하제.“직접 한다고?”“
미호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합강리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당산에 540미터의 토성이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못해 신기한 일이다. 당산 주변을 걷다보면 금방 느낄 수 있는 것이“세상에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또 있을까!”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농촌이라는 것이다. 들과 산자락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에 만족하고, 수확물을 이웃과 노나 먹으며 화목하게 살려고 한다.모자라는 것은 빌려 쓰고 여유가 생기면 갚는다.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하여 거둬들인 곡식들을 광에 쌓아두고, 장독의 항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더.”“하, 나는 무슨 일이라도 난줄 알고.”“그랬더니 뒤에 따라오던 아이 열 명 정도가 덩달아 일제히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지 안십니거.”“뜻밖이구먼!”“저는 깜짝 놀랐고 얼떨결에 박수를 치면서 함박웃음으로 응해주었지예.”“흠.”“아무 일 없다는 듯이 총총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지예.”“감동스러웠겠군먼.”“불과 2, 3초 정도 사이에 스치듯 주고받은 인사였는기라예.”“그 짧은 시간에.”“그 순간, 그리고 이후 계속 걸어가면서 내는 어떤 황홀감에 사로잡혔는기라예.”“어
진국의 땅이었던 연기군의 당산은, 마한시대를 거쳐 백제의 땅이 되었는데,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서로 고유의 전통을 자랑하다, 결국에는 보다 편리한 문화와 문명으로 편한 생활을 하려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개발하고 발전시킨 문화를 이웃 진한과 변한에 전해주는 종주국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후에, 위례성을 도읍지로 해서 건국했던 백제가, 공주와 부여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훌륭한 문화를 창조하여 이웃나라에 전해주었던
“그까짓 것 다시 사면 그만이지, 무슨…”“다시 찾겠다는 마음가짐이 전혀 엄는기라예.”“참, 누가 그런 수고스럽게 다시 찾겠소?”“기래도 한편에선 끼니 걱정에 이어 잠자리 걱정까지 해야 하는 아도 있다아입니꺼.”하지만 그런 뜻을 교장이 모를 리가 있을까.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체하며, 물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그런 조사를 하지 않지만 봉준이가 다닌던 시절만 해도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피아노 있는 사람! 아파트에 사는 사람!” 하며 학교에서 가구조사를 했다. 이런 조사를 하면 아
세종시가 조성되기 전에는, 연기군 남면 복통리라고 불리던 곳에, 당산이라는 산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던 이 지역은 두잉지현 일모산군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전의와 더불어 전기현으로 불렸다. 157m가 안 되는 당산은, 주봉과 주봉에서 완만하게 200m쯤 뻗어 내리던 능선이 솟아 오른 북봉으로 구성되는데, 사람들은 두 봉우리가 표주박처럼 보인다는 말을 한다.당산을 바라보던 길손 하나가 군함 같다며 무릎을 치는데, 너른 평야에 낮게 누운 형상의 비유로는 적절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평야를 바다로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아이들의 삶과 성적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안은교?”“그래도 성적을 끌어 올려야 해요.”“교장선생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지 안은교?“전 선생, 정부지침을 모르오?”“학교 서열을 매기지 못하게 되었지 안은교.”“전 선생 답답하긴, 그래도 실제로는 다들 매겨져 있으니까 하는 말이요.”“점차 수업의 질은 떨어진다 아이오?”“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것 누가 모르냐 말이요? 갑갑하긴.”편법을 동원해 학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그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고통스러워 교장한테 호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이고, 점심
옛날 옛날에, 마을을 범이 지켜준다 해서 ‘범지기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 것을 좋아했다. 사냥을 해도 필요한 만큼만 잡다보니, 산에 사는 동물이나 들에 자라는 초목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애들이 어린 동물들과 어울려 놀면 새들이 노래하며 날아들고, 들에 핀 꽃들도“애들아 반갑다. 나의 향기를 나누어줄게.”방긋 웃으며 향기를 품어낸다. 그런 마을에 목고라는 자가 들어오면서 평화가 깨졌다.어느 추운 겨울날, 털가죽으로 온몸을 감싼 목고가
매년 11월에 치르던 선발 시험을 올해부터는 5월, 11월 두 차례 실시해 학생들의 긴장감을 높이기로 했다. 과연 정상적인 교육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교장은 말했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이 왜 명문대에 고것밖에 못가느냐는 말을 들을 수가 없는 학교로 만들거요.”“…”“학부모의 절박함에 누구도 우리한테 돌을 던지진 못할거요.”“…”“전선생, 저소득층자녀, 결손 자녀도 있지만, 또래와 어울려 구김살 없이 공부하고 있어요. 만약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됐겠어요?”“기런데 걸리는 게 있고만요?”“뭐
“저게 뭐야, 빨래 아냐!”강물에 흘러오는 빨래를 본 현인이 강물에 뛰어 들어 집어 들어 올리자, 길게 늘어지는 빨래에서 “좌악”하고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현인이 그것을 쥐어짜며 올려다보는데.하늘에서 내린 햇빛이 금강에 튕겨 오르는데구름에 달 가듯 유랑하는 내님이 이제 오시네.낭자 하나가 물가에서 노래하며 방망이질을 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낭랑한지 하늘을 날던 새가 맴돌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가 뛰어오른다. 노래에 취한 현인이 멍하고 서있는데, 하늘에서 비춘 햇살이 하얗게 낭자의 허벅지에 반사한다.“빨리 가져오지 않고 뭐
교사들이 교사실천 대회로 모였다. 일대일 결연, 초진 거절 편지 보내기, 수업평가 받기… 힘겨운 실천을 자청했다. 책임을 맡은 봉준이는 수업과 이 일을 병행할 수 없었다.결국 퇴직의 기로에 섰다. 퇴직에 몸을 던지려니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었다.자기 직업도 뚜렷이 없던 아내는 ‘산 한 모퉁이 돌아야 그 다음이 보이는 법이에요’라며 봉준이 선택에 동의했다.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선택이 맞는지. 버려서 아름다운 것이 단풍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렇게 그의 선택을 쉬 결정하기엔 좀 더 많은 시련이 뒤따
물 건너 동쪽 어딘가에는, 의리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산다는 곳이 있었는데,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약자를 괴롭히며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데, 심술이 고약할수록 좋은 사람이고, 방법이 악랄할수록 정의롭단다. 그래서 거짓에 능하고 욕심이 많을수록 영웅대접을 받는다.어쩌다 나쁜 짓이 탄로되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우기다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데. 그런 일에 능수능란해야 두목이 될 수 있단다.“뭐야, 왜구보다 더 한 놈들 아냐.”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을에서는
국사봉에서 세종누리학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산을 깔아뭉개며 아파트 공사를 하는데, 그곳에서 쫓겨난 고라니가, 아직 그대로인 숲으로 들어가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옛날 옛날, 아주 옛날의 고정천에는 가재도 많았는데, 그 가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창기라는 소년이 있었다. 7남매의 막내로 부모 형제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러면 버릇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어리광이 좀 심할 뿐 착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심하게 돈 돌림병으로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고 말았다.“국사봉의 돌탑을 건드린
“학교문화에 남아있는 일제잔재는 일본이라는 나라보다는 파시즘의 잔재이기 때문에 문제야.”“민주시민의 교육으로 해소되어야 하고마, 유신체제 하에서 오히려 일제의 군국주의, 군사적 집단훈련이 강화돼 부활했제.”“학교 현장에 뿌리내린 일제의 위계적인 틀이 교육개혁 움직임에 걸림돌이 돼고있어.”“위로부터 일률적으로 모든 학교에 시달하는 교육의 틀 안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크지 않제.”우리 교육에서 ‘어디까지가 일제 잔재인가’라는 부분은 여전히 논쟁지점이다.해방 후, 우리 교육개혁이 식민교육에 대한
“아이들에게만 기런 문화가 남아 있는게 아이었제.”“그럼?”“월요일마다 열리는 교무회의는 교장, 교감선생님의 지시사항만 전달하는 자리고, 교사들은 입도 뻥긋 못하는 분위기였제.”1996년 3월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의미의 국민학교가 일제히 초등학교로 바뀌며 일제 잔재 청산의 물꼬가 터진 듯했다. 그러나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일제가 남긴 문화는 학교 안에 깊이 뿌리박혀있다.아버지는 일제가 우리 교육에 남긴 가장 강력한 영향으로 국가 주도적인 교육체제를 지적했다.이로 인해 국가, 교육청, 학교, 교사, 학생으로 이어지는
세종시에 살면서 느끼는 긍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호수공원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그중에서도 으뜸인 것 같다.그런데 2015년부터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에게 품었던 존경심까지 확인할 수 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볼 수 있어 더 자랑스럽다.나는 얼마 전에야 일본군의 극비문서를 해독하며, 일본이 어린 소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침략의 도구로 훈련된 일본군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소녀들에게 저지른 만행들을 기록한 문서인데, 살인의 맛을 아는 군인들이 가녀린 소녀들에게 폭력을 가하며 전투력을
하늘에 사는 신이 땅에 내려오기도 하고, 땅에 사는 인간이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는 옛날에, 금강의 금빛 모래밭을 거니는 것이 재미있다며, 민마루에 내려오는 신이 있었다. 옥황상제의 셋째 공주였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그날도 금강 변에서 놀고 하늘로 돌아가려고, 민마루에 서서 구름을 부르는데,“공주님, 이곳에서 주운 밤인데, 아주 구수하답니다.”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 하나가 밤을 가득 담은 자루를 공주에게 건네준다. 인간한테 물건을 받는 일이 처음인 공주는 당황하면서도 기쁘다는 듯, 싱긋 웃으며 밤자루를 구름에 싣고 날아올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네 날개를 마음껏 펼쳐라.”“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기 자체뿐인기라.”“하! 하! 하!”봉준이는 자신에겐 철저했다. 내일은 뭘 가르칠까로 밤을 새우고, 골몰했다.이때부터 전봉준은 교장의 지시에 의해 곤충과 식물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그렇게 시작한 결과 5년여 만에 아이들을 위한 동식물 채집관을 완성했다. 나비를 비롯, 각종 동식물들을 채집하고 박제를 하여 진열했다.나비와 곤충을 주제로 한 나비전문 채집실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교내에 건립된 충효관은 지상 3층 건물로 ‘나비야 놀자 채집실’은 2층에
2009년에 설계를 시작하여, 2013년 6월에 개방된 호수공원을 걷다보면, 인공호수가 아니라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자연호수로 여겨진다.지금은 먼 옛날로 생각할 수도 있는 1960년대의 이곳은, 봄에 뿌린 씨앗을 가을이면 추수하던 들판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생들이 메뚜기를 잡으러 뛰어다니기도 하고, 논두렁 아래로 흐르는 도랑에서 게도 잡고 새우도 뜨던 그런 곳이었다.5학년인 임종서는 그런 일보다 습지의 금개구리를 관철하며 땅에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종서가 그린 금개구리는 금방이라도 습지로 뛰어들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서만
“어떤 규칙이 있을 텐데.”“청소년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주체라는 선언이제.”“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청소년들에게 어떤 자유를 갖고 싶냐고 묻자, 대학 가는 게 쉬웠으면 좋겠어요, 시험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고 싶어요, 라는 대답을 내 놨제.”“그래,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할 중 알아야 해.”“청소년들의 모습은 의젓하고 지혜롭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제,”“어려운 부분을 날카롭게 찌르기도 하고?”“사람은 배움과 인격의 힘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만들어가는 존재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