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 별의별 일을 다 해도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어서 저승에 가면, 반드시 염라대왕을 만난다. 염라대왕은 그들이 생전에 한 일을 살핀 다음에, 지옥행과 극락행을 판단하는데, 좋은 일을 한 자들보다 나쁜 짓을 한 자들이 훨씬 많았다.“해도 너무 했군, 지옥행,”나쁜 업보 때문에 지옥으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염라대왕도 슬쩍 걱정이 되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는 자기 아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옥황상제의 심판을 받게 될 텐데, 아무래도 지옥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 염자를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독재자 앞에서도 추상같이 매서울 수 있었다.아버지는 강연도 하고, 대학에서 제자들 가르치고, 한때 정치권에서 어디 나와 달라, 맡아 달라 하는데 인연이 있으니 거절하기 쉽지 아니했다.‘요즘 니체전집 마무리를 하는 게 있으니 끝나기 전까지는 힘들다고 하면, 그런 제의에서 빠져나오기 수월하다’고 말했다.‘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죽을 때 글쟁이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교수도, 시민운동가도 했고, 이런저런 보직도 맡아봤는데, 고통스럽지만 글쟁이로 죽는 게 가장 인생을 잘 산 것’이라고 했다.스스
100만평이 넘는 장남평야가, 지금은 세종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도시로 변했지만, 옛날에는 먹을거리 풍성한 들녘이었다.가을바람에 벼이삭이 살랑거리며 황금물결을 이루는 벌판에서 가을걷이를 하던 아저씨가“이번 잔칫날에는 뉘 집 낭자랑 어울릴 생각이냐.”땀을 뻘뻘 흘리며 노적가리를 쌓는 조카에게, 보름날 밤에 열리는 잔치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풍년이 들면 신에게 감사드리는 잔치를 열고, 흉년이 들면 신에게 용서를 비는 잔치를 열었다.그것을 고구려는 동맹이라 했고, 부여는 영고, 동예는 무천이라 했다. 삼한
“인터넷 시대에는 글을 자유자재로 양껏 쓸 수 있지만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나의 움직임에는 하나의 동사에만 필요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라.”“신중을 기하지만 쉽지는 않아요.”“표현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며칠이 걸려도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내야 한다.”“…”술을 좋아하는 나는 늦게까지 자고, 글쓰기는 오후에 집중하고, 독서를 한다. 거의 대낮부터 밤까지는 주로 술을 마신다.“글을 쓴다면 반드시 남의 글을 읽어야 해.”아버지의 창작론이다.“저도 읽지 않으면 쓰는 게 두려워요.”“콘텐츠를 생산하느라 자기 속
시민주권이란 무엇인가!시민주권, 이 시도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서 최초로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깨어있는 시민, 참여하는 시민만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시민이 주인이 되는 권리 - 이것이 바로 시민주권인 것이다.근세에 들어 시민주권운동의 시작은 인도 간디의 무저항운동을 능가하는 3.1독립만세 운동일 것이다. 일제로부터 독립 후, 한일협정 반대운동, 삼선개헌 반대운동, 유신반대운동, 군부독재에 항거한 부마사태 등 시민주권운동의 거센 물결은 마침내 유신독재를 무너뜨리고 ‘서울의 봄’
연기군 서면의 쌍류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는 내를 따라 오른 송암 마을에 정자 하나가 서있다. 돌계단을 올라 살펴보니,“효자 김한정을 1882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제수하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는 정려문을 세워도 좋다는 것을 허가한다.”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석비가 서있다. 효를 중시하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산세가 포근하여 감싸이고 싶어진다.월하천이 시작되는 청라리에서 태어난 김한정이 19세가 되는 해에 부모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부인과 같이 백방으로 약을 구하며 봉양하기
“아버지,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중요해요.”“이 나이에 내게 사랑이 올까, 안 올거 같다.”“…”아버지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강하다 보니 오히려 위로의 표현이 안 되었다.“아버지, 간절하면 이루어질 거예요.”사랑은,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는 애무와 비교될 수 있다.애무는 당신 손으로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지는 거다. 그런데 애무와 폭력의 경계는 매우 미미하다는 거다. 얄팍하다. 당신은 무심코 상대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사랑했다.그리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당신
세종시 연서면에는 갈미봉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산줄기가 있다.쌍류리와 고복리와 청라리를 품고 좌우로 뻗어 내리며, 그 사이에 들어선 마을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바로 그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쌍류천이 도중에서 만난 월하천과 같이 내려가면서 졸졸거리는데, 마치우리는 미호천을 만나서 흐르다저쪽에서 흘러나온 금강과 합쳐넓고 넓은 바다를 보러 간단다넓은 세계로 나가는 기쁨을 노래하는 것 같다.갈미봉은 그것이 만족스러운 듯, 씽긋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어찌 된 일인가. 밤에 내려오던 신들이 대낮에 내려오지 않는가. “어찌 된 일입니까?
여기저기 곪아 터지지 않은 곳이 없다.최근 불거진 유치원 비리뿐만이 아니라 나약한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까지도 곪을 대로 곪아 이제 더 곪으려 해도 곪을 곳조차 없어 보여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소주잔에 실음을 더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대학은 대학대로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에 몸살을 앓고 있고 국회는 국회대로 국회의원들이 정책연구비를 횡령해 버렸다.공공기관의 경우는 자신들의 친인척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하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받지 아니한다.“유빽유직 무빽무직”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겨났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투병 중, 아버지가 남긴 글은 아버지의 마지막 자취였다.유년의 시절을 보낸 고향 함흥에서의 일제하 식민통치, 한국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긴 유랑의 시절을 보낸 대구, 부산과 인천,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 서울에서의 생활, 아버지는 나를 홀로 돌보며 어머니의 몫을 다했다.아버지의 역사는 이처럼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 한복판에 있다.아버지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과 집단이 관계된 사회적인 사건이라는 의미를 심어주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란 내 앞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스스로의 창조적인
원래 인간들은 새를, 자신들의 소원을 천신에게 전하고, 또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영물로 여겼다.그래서 새들이 날아오면 반기고 날아가면 다시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행복해진 흥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만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부여씨도 하늘에서 내려왔고, 신라의 박혁거세도 말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옥황상제의 사자로 보고,“나의 소원을 하늘에 전해주세요.”하늘을 나는 새를 향해 빈다. 그
옛날에 하늘과 땅이 생기고, 환인이 하늘나라를 다스릴 때의 일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나라보다 천하에 관심이 많아, 천하에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열겠다며, 3천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태백산으로 내려왔다.그리고 신단수 아래에 신시라는 장을 열었다.그 소문을 들은 신과 인간들이 모여들었다.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신시에 모여 상의하여 해결했다.그러다 보니 신시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신과 인간들이 그곳에 모여, 같이 걱정하고 기뻐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았다. 그 뒤로 방방곡곡에 장터가 생기고 그곳에서 물물을 교
장난기 어린 표정은 여전한 그를 만나면 맥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일순 무색해진다.뉘 집 누구와 누구의 근황을 읊어대는 투박한 사투리가 정겹다. 어느 별에선가 휙 날아와 떨어진 운석인 양 빤빤하게 굴어도, 어쨌든 잔뼈는 그 너른 오지랖과 눈길 속에서 굵은 게다.이상하게도 그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체 없는 일이다. 그에게 잘못하거나 못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난감한 일이다. 그의 행동과 마음이 파동의 진원이다.그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과거를, 안부를 들키는 것이 두려운 사람처럼 보인다.아니 남자들끼리는 그런 것이 조금 멋쩍다.
1592년 4월 13일에 부산진으로 침략한 왜군이 불과 보름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만다.왕과 대신들이 궁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망쳤기 때문에, 왜군들은 저항다운 저항도 없이 5월 말에는 개성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함락시킨다.그 전의 일이다. 왕한테 검을 하사받은 신립은, 왜군의 퇴치를 장담하며 새재에 이르러, 산세가 험한 새재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요격하자는 부하들의 작전을 무시하고, 넓은 들에 진을 치고 공격하다 왜군이 쏘아대는 조총을 당하지 못하여 강에 뛰어들고 말았다.그렇게 자신의 체면은 지켰을지 모르나, 조선의 강토와
“그때쯤이면 세상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마음 바닥까지 이해해 고요한 마음으로 그윽한 삶을 유지할 줄 알았어.”“…”“하지만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사실은 마흔 살을 불혹이라 명명한 이유였지.”“기때가 되면 마음이 더욱 치성하게 외부 자극과 유혹을 향해 내달리기 때문에, 경계하는 차원에서 그런 이름을 지은 듯하고마.”“그때부터 비로소 세상과 관계 맺으면서도, 내면에서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내 청소년기에는 외부 집단과 접촉하면서, 의미있고 풍
하늘나라에 잘 생긴 왕자가 태어났다.“아니 이번에도 왕자란 말인가.” 왕자가 태어났다는데, 옥황상제는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사정을 알면 옥황상제의 처지도 이해할 만하다. 옥황상제도 첫째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왕자가 태어났다고.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팔짝거리면서 기뻐했다.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황후는 낳을 때마다 왕자라, 다섯이 넘었을 때부터는 그들의 극성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몰려들어 코를 만지는가 하면 눈을 찌르고, 귀를 잡아당기는가 하면 머리
“혹시 우리가 어른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큰 환상을 부여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아마 기때부터 어른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거고마.”“집중적으로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으며, 그들은 어떻게 절망을 넘어서고, 위기에 대처하면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알고자 했어.”“많은 이들의 삶을 종합하면, 성숙한 삶의 기본 패턴이나 비밀 열쇠 같은 것이 있을 듯 했어.” “하지만 우리는 10대 내내 자립심 대신, 부모와 교사 말을 잘 듣는 것을 배웠고,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듣고 자랐던 것 같고마.”
범지기마을의 허파라 할 수 있는 두루봉에 어서각이라는 정자가 있다.어서각은 왕이 어떤 사람의 공을 치하하며 내린 글씨를 보관하는 곳으로, 어필각이라고도 한다. 어서각은 이곳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에 있는데, 왕의 글씨를 받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고을의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두루근린공원을 역사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지나가는 이성계가 우물가의 낭자에게 물을 청하자, 낭자는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 수도 있다며,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서 건넸고, 이성계는 그런 낭자의 재치에 마음을 빼앗겨 혼인을 맺었다.그리고 낭자의 오빠에게 벼슬을 내
“눈으로는 만화를 날렵하게 넘겨 읽었제.”“6.25 반공만화가 제법 많았는데, 교회 주일학교에서 더 잔인한 살인과 전쟁 이야기를 숱하게 들은 통에 별로 놀랍지도 았았어.” “풍선을 만지던 내 손은 하늘에 닿아 있었제.”“그것은 정말 친숙함을 뜻하는 거잖아.”불숙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중학생 때 친구들 중, 좀 올된 녀석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상한 사진을 가지고 왔고, 쉬는 시간 교실 한 구석에서 뭉쳐 그것을 보느라 선생님이 오신줄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사진을 빼앗기고, 사진을 가져온 녀석은 교무실로 불려가 출석부로 머리를 통타(
“기리고 열 살쯤에는 ‘이노마 콧수염 난 거 보이 마이 컸나. 아이고 얼메나 컸나 좀 보자’며, 어떤 액션을 취하려 하셔서 병법의 삼십육계 줄행랑을 스스로 치게 해주셨고마.”“하! 하! 눈에 선하다.”“난 풍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였는기라.”“얼마나 좋아했길래.”“내 용돈이 생기면 과자보다 먼저 풍선을 샀제.”“그리고?”“달이나 태양도 풍선일 거라고, 풍선이 아니고서는 저 멀고 높은 곳에 떠다닐 수 없는 거라 싶어제.”“하! 하! 그렇게 굳게 믿었단 말이지.”“동물원에 처음 갔을 땐 빨간 풍선을 하나 샀제.”“그래서?”“풍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