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 중 좋아하는 때를 들라면 11월이다.11월은 가을의 끝이기도 하지만 입동 절기가 든 초겨울이 시작하는 달이다. 가로수 길에 떨어진 낙엽들은 갈색 톤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발에 밟힌 잎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졌어도 보기에 추하지 않다.이 무렵이 되면 시간의 속도감을 실감하게 되니 나이 든 사람들을 서글픈 감상에 젖게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심리적 쇠락감(衰落感)은 영혼이나 육신의 건강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 따라 함께 흘러가지 않을 이 그 누구랴.세상의 무엇이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
숲속에 내리는 빗소리가 다감하다.5월의 햇볕이 찬란한 대낮의 산새소리가 알레그로의 피아노 소나타 라면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감미롭게 흐르는 메뉴엣 이라고 나 할까. 바람 한 점 없이 내리는 빗줄기가 수목들의 대화인 듯 소근 소근 마음까지 적셔주는 오후다.새로 모종한 고추밭 싹들이 이번 비를 맞고 허리를 펼 것 같다. 바쁘게 할 일도 없지만 앞개울에 늘어난 물도 볼 겸 산길을 내려가 아랫마을 어귀에 이른다. 물기를 머금은 수목들이 한껏 푸름을 더 하는 싱싱한 모습이 보기에 여유롭다.경사진 언덕길을 내려와 마을에 이르는 첫 번째
십 수 년 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그의 아내와 함께 기차로 왔다는 전화를 받고 역전으로 향하는 중인데 그는 벌써 내가 사는 곳을 향해 이만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 친구는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각별하게 지내던 사이다.밖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사회 초년시절에 겪었던 웃지 못 할 실수로 상사에게 혼나던 이야기를 해도 지나간 이야기는 아름답기만 하다.그가 문득 우리의 추억이 담긴 흑백 사진 서너 장을 내 놓는다.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과 고궁에서 찍은 스냅 사진들인데 모처럼 나와 옛 기억을 더듬어
봄이 짙어가는 숲속에 휘파람새가 울기 시작했다. 초록색 구름처럼 피어나는 나뭇잎 사이에서 영락없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때로는 청아하게 어떤 때는 애절하게 이어진다. 한낮의 맑고 밝은 새소리에 비해 해질녘의 새 소리는 애조를 띄운다. 온종일 계속 되던 이 소리는 잠시 여운을 두기도 한다.숲에 사는 새 소리는 다양하다. 딱따구리 과 의 새가 나무를 쫄 때는 빠르게 회전하는 기구 음으로 산 속의 정적을 울린다. 오월에 접어들면서 숲은 짙은 색으로 물들고 꾀꼬리 소리가 청아하게 메아리친다. 소쩍새가 밤이 새도록 울고 나면 아침을 노래
문상을 가기 전날 밤은 세찬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렸다. 봄비치고는 꽤 많은 양이어서 떠나는 이의 못 다한 사랑에 대한 아쉬운 눈물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망자를 보내는 슬픈 마음으로 빈소를 지키는 가족들에게 그 밤의 빗소리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연전에 남편의 발병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던 그녀는 지금껏 가슴 속으로만 애태웠을 뿐 우리들에게 낱낱이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이따금 남편과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면서 찍어 보여주는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이별을 준비하는 추억여행이라는 예감을 주는 것이어서 행복해 보이기보다는 아련한 연민을 느끼게
옷이 날개라는 말은 상식적인 얘기다. 몸에 맞는 좋은 새 옷을 입으면 날아갈 듯 상쾌하고 사람들의 시선에도 당당해 진다. 그러나 옷차림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거나 초라하다 싶을 때는 마음가짐이 위축되기도 한다.입고 있는 의상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하고 긴장의 끈을 풀어 편안하기도 하다. 품위 있는 옷차림에 행동마저 신중하다면 인격적인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생산직 현장에서는 작업복을 입어야 심신이 편하고 지체 높은 어르신을 찾아뵙거나 예를 갖추어야할 때의 의상은 거기에 걸맞아야 한다.옷차림은 그 사람의 직종이나 인
도시를 떠나 산마을로 이사 온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산에 축조되어있는 시설과 그 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잠시 들어온 것이 호젓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그냥 눌러 앉고 말았다. 간단한 짐을 정리하고 산에서 맞은 그 저녁에 접동새 울음소리를 들었다. 자규(子規) 혹은 소쩍새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놈의 울음소리는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헌데 나는 집을 떠난 첫날밤인데도 마음이 차분하게 갈아 앉는 것이 마치 긴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마저 들었다.산길을 걷고 있을 때 풀숲 속을 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잠실에 도착했다. 청첩장에 인쇄된 결혼식장을 가기 위해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복잡한 지하 잠실역의 내부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참 망설이다가 기억을 되살려 팻말을 따라 표사는 곳을 찾고 이내 사람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전동차 도착할 시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 인파가운데 얼핏 스치는 한 남자의 안면이 낯설지가 않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에 대한 감정이 아직도 달갑지 않게 남아있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내 고루한 성격 때문
아내는 오래전부터 무릎의 통증으로 많은 고생을 해왔다. 체중을 좀 줄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걷기운동은 물론 식사량도 절반으로 줄였다. 수영장에도 다니고 물속 걷기 등으로 체력을 소모하면서 3개월쯤 지나가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체중은 줄어들기 시작했어도 이미 망가진 무릎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몇 년 전 부터는 그 분야에 이름난 정형외과를 지정해 놓고 연골 재생에 좋다는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진통효과 외에는 기대할 수가 없어 점점 수술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게 되었다.그러던 중 딸네 가정이 외국으로 살러 가게
나를 큰 오라버니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 좋아 보인다는 말인데 나 역시 젊은 여인과의 시간이 황혼녘의 햇살처럼 새삼스럽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 자신을 향한 또 다른 내가 타이르는 것이었다.“이 사람아, 뭔 짓이야...얼른 헤어져서 들여보내지 않고...”호젓한 밤길을 걷다가 숲이 우거진 공원 벤치에 앉았다. 등산에 대한 이야기도하고 다음 산행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데 가을 밤 시간은 빠르게 깊어간다. 가정과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다가 그녀의 원만치 않다는 성생활에 대한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그 아이가 어떤 이유
어떤 모임에 참석해서 저녁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약속보다 반 시간정도 늦게 도착했더니 일행들은 벌써 술잔을 앞에 놓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몇 순배가 지났는지 얼굴마다 불콰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내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내 막걸리 잔이 내 앞에 주어졌다. 모처럼의 만남에 가벼운 마음으로 술잔을 들었는데 좌중 한 사람의 건배사가 파격적이어서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건배사를 제의했던 회원은 평소에도 언어를 구사 하는데 순발력이 있는데다가 성격도 쾌활한 편이라 어떤 모임에서든 좌중을 웃기기도 하고 진행을 부드럽
우리 내외가 잠시 맡아서 키우고 있는 외손자 윤우 이야기다. 아이의 지능이나 신체적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늘 감사하며 산다. 월령(月齡)에 따라 관심사가 변하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한 동안 자동차와 자동차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낸다 싶었는데 이제는 차량의 명칭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엔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의 이름을 묻기에 보이는 대로 알려주었더니 길에서 만나는 차량을 보면“저건 아반떼” “저건 소나타” “저건 에스엠 화이브.” 이런 식으로 알아맞힌다.하루는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
성탄 전야가 조용히 깊어 간다. 이곳 산골로 거처를 옮긴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인데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이 울적하다. 책을 들여다보나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TV를 볼까 하지만 라디오마저도 수신이 어려운 난시청지대인 관계로 심한 잡음에 시달리는 것이 피곤할 뿐이다. 읽다가 접어둔 수필집을 다시 손에 든다. 밖에선 하릴없는 진돌이 녀석이 밤 시간이 무료 한 듯 두어 번 짖어댄다.성탄은 아기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구세주로 오신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화목제 이신 것을 생각하며 기쁨가운
승용차를 폐차시키려 한다. 십년이 채 안되어 사람의 나이로 친다면 나 정도쯤 된 듯 해 여기서 버리기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한때를 함께한 자동차를 폐차한다 하니 서운한 마음이 여간 아니다.일그러진 곳 몇 군데 판금하고 잡소리 나는 원인을 찾아 손보면 앞으로 수년은 더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물차가 내 생활용도에 맞는데다가 서있는 날이 더 많은 승용차는 결국 폐차하기로 마음을 정 하게 되었다.편리한 운행을 위하여 설치했던 약간의 장치를 풀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위층에 하얀 할머니가 사신다.자그마한 체구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하얀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 댁은 중년의 아들내외와 손자 둘, 할머니까지 다섯이 한 가족이다. 그러나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나가면 낮에는 할머니 혼자서 집을 지킨다. 언제나 용모가 단정하고 말씀도 없는 편이라 우리는 늘 어려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지냈다.어느 날 아침나절이었다. 바쁜 일이 없는 날이라 늦게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그 할머니가 우리 집을 노크하신다. 우리도 팔십이 넘으신 노모를 모시고 살기
가까이 지내는 선배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 수년 전에 아흔을 넘기셨는데 노환으로 일주일쯤 누워 계시다가 어제 새벽에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구구팔팔이삼사 라는 어른들의 희망을 몸소 실행에 옮기신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 함께 문상 온 동료들이 권하는 두어 잔의 소주를 마신 탓으로 기분은 적당히 가벼워졌다.우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인생의 후반부를 내려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이 더 큰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집 뒤의 골짜기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바위틈을 감도는 하얀 물살은 제법 높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작은 소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따금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며 다람쥐와 청설모의 동행이 되기는 했어도 계곡을 따라 오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숨겨진 비경이라도 찾은 듯 신비스러운 마음으로 바위사이 돌 틈으로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산으로 거처를 옮겨 산지 한참이 지났지만 오르지 않았던 산길에 이와 같은 풍경이 숨어 있었던 사실이 마치 보석이라도 찾은 것처럼 소중하게 여겨진다.10월로 접어들자 검푸르던 숲 활엽수 잎 새가 황록
501호 할머니도 우리 못지않게 기뻐하고 있더라고 했다.그런데 지갑 안에 있던 현금 중 만 원짜리는 없어지고 천 원짜리 아홉 장만 남았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아까워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만 원짜리 몇 장까지 십 여 만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모두 없어졌다는 우리말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지갑을 주운 장소는 우리가 차에서 내린 바로 그 자리가 틀림없다고 했으니 습득한 시간은 중요치 않다. 그렇다면 다른 누구도 이것을 손에 넣었던 이는 없다. 그런데 지갑을 경비실에 맡기고 온 당사자는 그 댁
그런데 바로 이때 아내의 휴대전화에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네 그런데요. 네, 네 맞아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맞아요. 현찰도 들어있고 카드도 있어요. 아 네, 잠시 후에 댁으로 갈 께요.”좁은 차 안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통화를 끝내더니 희색이 만면한 표정이 된다. 듣고 보니 501호 할머니가 어젯밤에 지갑을 주웠는데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잠깐 들여다보니 현찰도 얼마정도 들어있고 카드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줍고 나니 왠지 겁이 나서 더 이상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얼른 경비실에 신고를 하고 맡겨 놓았다는
토요일 오후에 귀가하자 아내가 “포항 친구가 과메기 한 상자를 보내 왔다” 고 한다.그런데 과메기와 함께 곁들여야하는 양념이 없다며 동네 마트로 쇼핑을 가자는 것이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공복감도 들고 주말 이니 뭔가 별식이 생각나던 김에 흔쾌히 동행했다.걸어가도 되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자동차를 가지고 간 것은 얼른 다녀와서 시장한 속을 채우려는 의도에서였다. 다른 것은 집에 있다며 물미역과 쪽파 두어 단을 바구니에 담고 나가려 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막걸리 한 병도 슬쩍 담았다. 자동차를 타고 간 것에 비해서 싱거운 쇼핑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