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눈오는 날, 차를 버리다지난 6일 오후 5시 30분, TV 촬영을 하기 위해 자재를 싣고 대평리 동생네를 들렀다. 대전 MBC ‘e-세상이야기’에서 촬영이 나왔는데, 나의 집 짓는 일과 일상적인 삶을 찍자고 해 엊그제부터 촬영을 하고 있었다. 자재 구입을 해 동생네 집에 내려놓고 나오다가 짐을 실은 트럭 뒷바퀴가 보도블록에 걸리는 바람에 바퀴가 찢어지고 휠이 찌그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눈은 내리고 어둠이 내리깔리는 순간 나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은 VJ는 입이 귀밑으로 살며시 올라가며 벌어지고 있는
24 장작불에 삼겹살로 보낸 연말연말에 후배들이 집으로 쳐들어왔다. 마당 한가운데 차가 가득 차고, 구워 먹을 돼지갈비와 삼겹살이 도착하자 우리들의 연회는 시작되었다. 장작을 피우네, 거실에서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굽네, 하더니 끝내는 여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밖에서 드럼통에 고기를 굽기로 했다. 후배들은 연휴 끝이라 저마다 지난밤에 찌들 대로 찌들었는지 대부분 파김치가 되어 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술꾼들이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다했고, 불판을 만드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미리 준비도 되지 않은 자리라 뒷산에
23 추석맞이 가족 운동회 우리 가족은 작년부터 가족운동회를 시작했다. 작년에도 20여 명이 모여 우리 아들 성욱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운동회를 했는데 올해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작한 운동회를 이젠 조직적으로 준비하기에 이르렀다.올해는 고등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다섯째 딸이 운동회 프로그램이며 준비물들을 꼼꼼이 챙겨왔다.홀어머니 밑에 7남매, 각자 자녀 둘씩. 우리집은 홀어머니 밑에 7남매가 있다. 아들인 나를 비롯하여 내 위로 누나 하나에 여동생이 다섯인데, 다 결혼하고 막내가 이번 추석 때 결혼할 남자를 데리고 오게
22 아빠, 우리가 TV에 나왔대요즘 주변에서 인사 받는 일이 많아졌다.“장 목수, TV에서 봤어. 화면발 잘 받던디…….”“이거 유명인사 되었던데… 그렇게 보니까 또 장 목수가 달라보이데…….”얼마 전 기남방송이란 지역 케이블에서 일주일 동안 나를 찍어간 적이 있었다.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목수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 삶을 그냥 있는 그대로 찍어보자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거의 일주일 동안을 스토커처럼 붙어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약간의 연출도 하고 촬영을 위해 내 생활을 거기에 맞추는 일도 있었
21 20년 만에 교회로오늘도 아침에 늦었다. 아이들과 나가는 길은 항상 허둥댄다. 아이들 세수 시키랴, 옷 입히랴, 뭐 준비하랴 하다 보면 항상 시간에 쫓기 듯 하다. 오늘도 근처에 있는 에덴교회에 나갔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교회 나가기로 생각할 때 그래도 그동안 보아왔던 교회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기존의 교회처럼 형식을 따지고 복음주의 형태의 교회가 아니어서 좋았다.내가 나가게 된 교회는 에덴교회라고 주일날 교인들이 교회에 뺑 둘러앉아 성경과 설교 내용을 돌아가며 읽는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하고 예배를 끝낸다. 일반 교회처
20 성욱이 학급 부회장 되다오전 11시, 아내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통화를 원하시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주세요… 엄마!”학교에서 수신자 부담 전화가 오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나? 순간 작년에 학교 전학 시켜달라고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학교에서 수신자 부담 전화로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했다.그래서 고민 끝에 읍내 큰 학교에서 시골 아주 작은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정신 없이 아무 버튼이나 누른 후,“성욱아! 무슨 일 있니? 다쳤니?”“엄마, 우리 반 친구들한테
19 시골 학교로 전학 간 성욱이10여 년 전에 루소의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땐 별 목적 없이 그냥 읽던 책들인데 그때 기억나는 것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큰 화두였다. 그래서 현재는 이렇게 시골 고향까지 보따리 싸고 내려와 정착한지도 모른다.대전 살다 이곳 시골에 정착한 지 벌써 6년 정도가 지났다. 고향 땅에 목조주택으로 집도 짓고, 아내도 학원을 차려 조치원댁이 다 되어 가고, 아이들도 처음에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가 무서워 울고불고 난리더니 지금은 도둑고양이만 보면 때려 잡는다고 쫓아다닌다. 촌놈들이 다 된 것
18 추억의 썰매장몇 년 전부터 동네로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저수지 밑 논에다 물을 대고 썰매장을 개장했다. 조치원읍내에서는 유일하게 유원지가 되는 우리 동네 고복저수지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긴 셈이다. 처음 이 옛날 썰매장이 생기고 나서 참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옛 추억의 장소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치원은 작은 도시지만 이 썰매장이 겨울마다 매년 없어지지 않는 걸 보면 웬만큼 장사가 되는 것 같았다.3년 전부터 겨울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타러 갔는데 올해는 그래도 이놈
17 아들한테 처음 받는 생일 선물엊그제였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자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느닷없이 물었다.“아빠, 생일이 오늘이지?”“무슨 생일이?”“아빠 생일이 12월 14일이잖아?”“응, 그건… 음력인데?”“음력이 뭔데?”“글쎄, 하여튼 아빠 생일은 아직 멀었어. 한 달이나 있어야 해.”유치원에 다니는 아들한테 음력을 이야기해 주기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건 늦장가 가서 아들 둘을 낳았지만 아들놈한테 생일 선물을 받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들놈이 생일 날짜까지 기억해주는 게 기분이
16 가문의 영광엊그제였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글쎄, 성욱이가 운동회 연습하는데 달리기 3등을 했대요.”“뭐, 3등? 아니 그것밖에 못 했어?”“그것밖에라니요? 3등이면 잘한 거지요. 당신은 맨날 꼴지했다면서요?”“맨날 마당에서 축구 연습하는 놈이, 그것도 매일 두세 시간씩이나.”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시골로 이사 오고 제일 좋은 것 중 하나가 맘껏 뛰어놀 수 있다는 거였다. 마당에 잔디를 깔아놓았는데 네 살, 일곱 살 먹은 아들 두 놈들이 얼마나 월드컵 축구에 미쳐 날뛰는지 잔디가 배겨나질 못하고 있었다.
15 두발자전거시골 이사 오기 전에 대전 자활 후견기관에서 중고 자전거를 두 대 산 적이 있었다. 거기서 일하는 선배가 옛날 같이 일하던 목수였는데 허리가 안 좋아 조그맣게 중고 자전거포를 차려 자전거를 팔고 있었다. 그때 마침 돈이 없어 우선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와 다음 날 햅쌀로 방아를 찧어 갖다주었다. 하나는 내가 타는 어른용이었고, 또 하나는 보조 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였다. 어른용은 가끔 내가 논에 갈 때 타고, 회관이나 이웃 동네 바람을 쏘일 때나 조금씩 탈 뿐 항상 마당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요즘은 하도 안 타
14 운수 대통한 날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도롱골 천수답 논에 물꼬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아직 시집 안 간 딸들 반찬이라도 해줘야겠다며 대전에 나가면서, “비가 많이 온다니께 도롱골 물 대놓은 것 줌 타놓아라. 그냥 놔뒀다간 다 터져 나가니께.” 신신당부를 하고 바쁘게 딸네 집에 가셨다. 나는 나중에 불호령이 떨어지는 게 무서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 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 애들만 놓고 가기 뭐해 아들 두 놈을 리베로에 태우고 그 좁은 농로 길을 올라갔다. 도롱골 우리 논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뭔가 앞바퀴가
13 치사한 여자들, 밤에 집 나가다참 치사한 건 여자들인 것 같다. 올해 중에 가장 추운 엊그제 이틀 동안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 엄동설한에 떨면서 잤다. 내가 사는 집은 목조주택이라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도 웬만큼 참을 만하지만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이었다. 평소 목조주택은 단열이 잘 된다고 큰소리를 친 게 있어 어쨌든 엄동설한에도 밤을 지내야 했다. 목조주택을 짓는 업자라서 목조주택의 단열성을 입증하기 위한 객기라고 누군가 농담을 하겠지만 그만큼 참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추웠다. 여자라고는 두 명이고
12 나의 복숭아밭내가 도회지로 나갔다가 다시 시골로 귀농한 게 15년 만이었다. 옛날 이곳 시골에서의 기억은 복숭아밭에 대한 추억으로 이어진다. 우리 집은 논은 한 뙈기도 없고, 밭이라고는 이 복숭아밭과 고추밭 조금이 전부였다. 시골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처럼 땅없이 7남매를 키웠다는 게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니까 거의 두분이 품팔이를 해서 7남매를 공부 가르치고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는 집 뒤에 멀리 떨어져 있던 산밑에 복숭아밭이 있었는데 동네에서 과수원이 있는 집은 우리 집이 유일했다. 비오는 날이
세종시는 자연스러운 성장이 아닌 철저한 계획 아래 설치된 도시다.충남지역 대부분에 충북지역 일부를 흡수 통합한 만큼 각 지역의 특성과 세종시만의 새로운 성격을 동시에 지니기도 했다.문제는 흐름이 아닌 시작이란 점이다.도시 구조와 인프라를 완성시키기 전 태동한 자치단체는 인접 지역 또는 먼 거리의 입김이 불가피했던 듯하다.세종시는 다양한 언론매체의 진출이 예고된 한편 이미 포화 상태를 이루고 있다.인근 대전시와 충남도, 충북도에 비해 등록된 언론매체와 기자 수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시 안팎의 설명이다.세종시 등록 기자 수는
11 동네 군 서는 날어제 저녁 옆 동네에서 술을 마셨다. 돼지를 기르는 후배와 숯불에 촉촉살을 구워 마신 술이 조금은 무리했나 보았다.아침에도 술이 덜 깨어 헤매고 있는데 어머니의 닦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빨리 일어나. 동네 사람덜 오늘 서당 풀 깎기루 했어.” “뭔 소리유, 풀은 무슨 풀을 깎는다구…….” 새벽 5시 반이었다. 그렇지만 동네 일이라는데 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술이 덜 깬 상태로 예초기를 점검했다. 며칠 전 복숭아밭을 깎고 나서 휘발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예초기 날도 다시 갈아야 할 것 같았다. 이렇
10 버스비를 강탈한 기분아침마다 전쟁이다. 시골로 이사 오고부터 매일 겪는 일과 중에 하나다. 아들놈이 8킬로미터 떨어진 조치원 읍내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운전수 역할을 해야 했다. 오늘도 이놈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징그러운 벌레라도 삼키듯 하더니 또 늦었다. 아내 동작이 급해지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내가 목수 일을 나갈 때는 대부분 아내가 맡는 역할이지만 오늘처럼 일이 없어 집에 있을 때는 밥이라도 얻어 먹으려면 내가 나가야 한다. 오늘도 새벽부터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이준배 세종시 경제부시장이 이달 30일을 마지막으로 지난 24일 사표를 제출했다는 후문이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에 뛰어들겠다는 포부다. 취임 1년여 만에 시청사라는 둥지를 떠나는 이 부시장은 험난하지만 보다 큰 뜻을 품고 전초전에 나선 셈이다.지금까지 최민호 세종시장 곁에서 시정 최전선이라는 중책을 맡아 온 만큼 경험과 자신감이 그의 발길을 재촉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면에는 최 시장의 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부시장이 총선 전투에 나아가기까지 측근들의 보살핌과 고언은 필수요소였을 것이다.이 부시장의 행보를 놓고 일각에선 인근
09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대전에서 후배 부부가 놀러왔다. 마침 집에 술안주 할 것도 없고 해서 후배한테 논에 우렁이나 잡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뭔 우렁요?”“아 글쎄, 쫓아만 와봐. 양동이 갖구.”봄에 모내기를 하고 거의 처음 가보는 논이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성화를 해대도 난 별로 논에 갈 생각이 없었다. 벼야 심어놓으면 지놈들이 알아서 클 텐데 내가 논에 한 번 간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는가? 농약도 한 번 안 하고 풀 약도 하지 않았다. 처음 여기로 이사 오면서 짓기 시작한 논농사가
08 날라리 농사꾼의 모내기 저녁에 사무실에서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화가 잔뜩 나서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녁을 돌미나리에 들기름을 넣어 간단히 비벼먹고 나서야 어머니의 화풀이가 시작되었다.“니가 뭘 잘 났다고 고집여. 동네 사람들 다 그러는데 마지기당 비료 세 짝은 넣어야 한다더라. 다들 그랴. 한평생 전문적으로 농사 짓는 사람덜이 잘 알지. 니가 뭘 안다고 그랴.”“아 엄니두, 아침에 얘기했잖아요. 비료푸대에 분명히 300평당 40Kg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 사람들은 까막눈인가? 써